길을 헤매다.

by 기차는 달려가고

익숙하지 않은 곳에 가면 길을 잃기 쉽다.

언어가 안 통하는 곳이라면 더더욱.

요새는 길을 찾아주는 스마트폰이 있으니 예전처럼 당황하지는 않겠지만.

내가 여행 다닐 때는 스마트폰도, 내비게이션도 없어서,

이리저리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는 편인 나는 여러 번 길을 잃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아는 분 소개로 그 동생분 댁에 머물렀었다.

하루는 혼자 동네 산책을 나갔다.

큰길을 따라 걸으면서 잘 정돈된 고풍스러운 동네를 재미있게 구경했는데,

조용한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나와 들어선 골목에서 방향을 잃어버렸다.


주택가는 평지에 거의 3~4층 높이의 독일식 가옥이 주욱 이어진 긴 골목들.

이정표가 될 만한 높은 건물이나 산도 없어서,

고개를 빼어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보이는 건 비슷하게 생긴, 문이 닫힌 집, 집, 집들뿐.

물어볼 만한 가게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공중전화도 보이지 않고.

지나는 사람도 없이,

골목에는 오후의 부드러운 빛이 내리쬐는 그냥 나른한 고요함뿐이었다.

골목을 빠져나오면 또 비슷한 골목이 이어져

끝이 안 보이는 미로에 당황한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쪼그려 앉았다.


내가 어디에서 왔더라, 기억을 떠올리다가.

기왕 이리된 거 동네 구경이나 해야지.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집마다 창문을 장식하는 하늘하늘한 레이스 커튼과 꽃병,

파스텔 톤의 건물 색상과 각기 다른 현관 문의 모양을 구경하면서 천천히 걷다 보니.

어느새 내가 걸어왔던 큰길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뉴저지에 있는 친구 집에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친구 집 가까이에 맨해튼으로 곧장 가는 버스가 있어서 구경 다니기가 쉬웠다.

한 번은 집에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잘못 내렸다.

내리고 보니 여기가 어딘지 위치 파악이 되질 않아 동서남북도 가늠이 되지 않는 처지.

주택가라서 자동차만 드나들 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그 번호의 버스가 오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데,

내가 미리 내린 건지, 더 온 건지도 알 수 없었으니.

무작정 버스만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또 곤란한 처지에 놓여도 남에게 도움을 거의 청하지 않는 별난 버릇이 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내가 어디에 있든 이른 오후에는 집으로 향하는 사람이어서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는 시간이 있었다는 점.

어떻게 길을 찾아 친구 집까지 왔는지,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데.

내가 내린 버스가 떠나고 정신을 차려보니 낯선 동네였고,

도로 이정표 어디에도 친구 집 부근의 지명을 찾아볼 수 없었던 그 막막했던 기분은 지금도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



어머니와 동생과 L.A. 에 좀 오래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한인타운에서 저녁을 먹고 밤거리를 구경해볼까?

해서 L.A. 중심가 쪽으로 차를 몰았다.

안 그래도 밤눈이 어두운 내가 조명을 받는 큰 건물들에 정신 팔려 따라다니다 보니,

맙소사!

어느새 노숙자들이 길을 점령한 지역이었다.


두어 사람이 차를 에워싸고 문을 두드리는데 왜 그때 하필 신호등까지 빨간불을 켜주시나.

융통성이 부족한 나는 아무리 사정이 급해도 신호는 지키는지라 차를 멈췄더니.

심지어 자동차 보닛에 올라타려는 뭔가에 취한 듯한 노숙자들이라니.

놀란 건 다들 마찬가지였을텐데,

뒷자리의 어머니는 괜찮아, 천천히, 침착하게,라고 조용히 말씀하셨다.



어머니와 동행한 여행에서 비슷한 상황이 여러 번 있었다.

캄캄한 밤 L.A. 도심에서 남쪽 지역을 잇는 5번 고속도로에서,

빠른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들에 밀려 차선을 바꾸지 못해 출구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계속 남쪽으로 달려야 했던 적도 있었다.


괌에 갔을 때는 현지인들 동네를 보겠다며 한적한 시골까지 내달렸다가 돌아오는 길.

주변에는 온통 어둡고 캄캄한 숲.

표지판도, 불빛 하나도 보이지 않던 어두운 길을 침묵 속에 오직 헤드라이트와 직감에 의지해 돌아온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내가 더 당황하지 않도록 조용함과 태연함을 지키시면서.

괜찮아, 좀 돌아가지 뭐.

딸이 안심하라고 다독다독 토닥여 주셨다.


동행자의 힘이 그런 게 아닐까?

우리는 함께이고, 지금은 곤란한 처지에 빠졌으나 곧 길을 찾아낼 것이니.

마음을 안정시키고, 침착하게.

찬찬히 상황을 풀어 나가자 다독이는 것.


그런 어머니와 동행해서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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