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 정돈-최후의 보루

끄적끄적

by 기차는 달려가고

외출이 잦아지면 몸과 마음이 피로하고,

지친 심신은 그대로 집에 반영된다.

꺼낸 옷과 가방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하여 옷걸이에 포개어 걸쳐두고,

빨래거리가 쌓이거나 세탁한 빨래도 가래지지 못한 채 건조대에서 바싹 말라가고 있으며,

방바닥은 말끔하지 못하다.


침실, 부엌, 현관만 말끔하게 정리했다.

내게는 이 선이 최후의 보루,

다른 곳은 눈 질끈 감고 버틸 수 있는 마지노선이었던 거다.



사람 사는 집은 인테리어 잡지의 스틸사진처럼 늘 깔끔하게 정돈되기가 쉽지 않다.

동선을 따라서 물건이 들락거리고,

쌓이고,

흐트러진다.

옷이, 그릇이, 먹을 것들이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머리카락들이 살살 날아다니지.

사 먹는 생수와 택배가 일상이 되다 보니 어느 집이나 이름표 붙은 택배상자와 생수통, 포장재가 쌓여 있을걸?

택배를 받아 현관에서 박스를 열어 주문한 물건은 꺼냈지만.

반짝반짝 눈을 빛내면서 새 물건을 손에 들고 냉큼 집안으로 들어간다.

이름표가 붙은 택배상자와 거칠게 뜯은 포장재는 현관에 남긴 채.

곧 정리해서 집밖으로 내보내야지, 생각은 하겠지만.

아 몰라, 나중에 한꺼번에 정리해야지,

어질러진 현관은 외면하고 휴대폰 삼매경에 빠져버리는 거다.


사람이 쓰고, 사고, 소유하는 물건들은 수시로 들락거릴 뿐 아니라 모양도, 크기도 각양각색이어서,

그 모든 것들을 항상 일목요연하게 정돈하기는 어렵다.

사용한 물건을 제자리에 돌리는 데는 일일이 사람 손을 요구하기에,

안 그래도 피곤한데요?



집 어느 곳은 당장 쓰지 않는 물건을 쌓아두는 곳으로 만들어야 다른 공간을 말끔하게 사용할 수 있다.

창고나, 다용도실 또는 작은 방 하나.

원룸이라면 문이 닫히는 벽장이나 하다못해 가림막을 해서라도 물건 쌓아둘 자리를 만들어야지.

그곳에다 여분의 물건 또는 당장 정리할 수 없는 물건들을 꽉꽉 채워놓고,

다른 공간은 보기도 좋고 쓰기도 좋게 정돈하는 거다.


내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공간만이라도 기필코 깔끔하고 기능적이며 보기에도 좋게 정리 정돈하고,

깨끗하게 청소하자.

너무 힘들어서 집 전체를 말끔하게 정리 정돈할 수 없다면,

어느 한 공간이라도 오아시스를 만들자.

아이들 키우고 직장 다니느라 집이 난장판이어도,

침실이나 작은 방 하나라도 고요하고 깨끗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면.

어지러운 집안꼴에 짜증이 치밀어 오를 때,

문을 열면 순간이동이라도 하듯

삶의 전장에서 고요한 천국으로,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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