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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Dec 03. 2023

딸과 엄마

끄적끄적

소설을 읽는 중인데 진도가 참 안 나간다.

일단 읽기 시작한 책은 재미없어도 끝까지 읽는 편이라 매일 몇 쪽씩 읽고는 있습니다만,

거참 껄끄럽군요.


요리가 중요한 소재라서 집어든 소설인데,

소설 속 주요 인물인 두 여자는 모두 부모에게서 착취당하는 딸들이다.

19세기 영국,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시인을 꿈꾸는 노처녀는 여자가 글 쓰는 걸 안 좋게 보는 사회적 금기에 도전하는데.

이 때문에 어머니는 딸을 비난하거나 부끄럽게만 여긴다.

넉넉한 살림살이를 지탱해 주었던 아버지는 사업이 일시에 무너지면서 도피하고,

세속적인 어머니는 딸에게 남들 모르게 책을 써서 돈을 벌거나 결혼으로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압력을 가한다.

딸은 어머니에게서 정서적인 지지를 전혀 받지 못하면서 의무만 있는 형편에,

내심 어머니를 미워하고 경멸한다.

벗어나지도 못한 채 그저 벗어나고만 싶은 족쇄일 뿐인 어머니.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다른 딸은 어머니로부터 깊은 사랑과 좋은 가르침을 받았지만,

그 어머니는 정신을 놓아버려서 딸을 힘든 처지에 빠뜨린다.

전쟁에서 다리를 잃은 아버지도 아내가 그리 되고는 술에 빠져 폐인이 되었으니.


원래 나쁜 성정에 왜곡된 가치관으로 딸을 괴롭히는 어머니의 딸은 불쑥불쑥 뾰족하게 대응하고.

온유하고 올바르지만 이제는 미쳐버린 어머니의 딸은 그로 인해 참으로 어려운 일을 겪어야 하지만.

그래도 불행한 어머니와 가엾은 아버지를 한없이 안쓰러워하는데.

부모는 딸의 보호자 역할을 하기는커녕 딸의 행복을 가로막고 인생을 힘들게 하는 걸림돌이다.



소설에서 딸들은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내므로 소설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다.

여성 작가의 작품 중에 이렇듯 어머니가 딸을 심하게 억압하면서 모녀가 감정적으로 대치하고,

아버지는 이에 관심이 없거나 무능해서 고통스러운 처지에 놓인 딸을 방임한다는 설정이 가끔 보인다.

분명히 나쁜 어머니가 있고,

본디부터 돼먹지 않은 여자들이 자식을 낳아 자기 자식에게도 못된 성정 그대로 해대는 이기적인 엄마들이 있다.

마찬가지로 힘껏 부모 노릇 하는 엄연한 부모를,

제 욕심을 채워주지 못한다면서 원망하는 못된 딸들도 있고.

못난 자신을 변호하느라 남 탓, 부모 탓 하는 삐뚤어진 딸이 작품에 왜곡된 심리를 그대로 쏟아내는 경우도 있다.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다양한 모습을 보았고.

또 인간의 교활한 면도 알다 보니 인간관계에 있어 일방적인 가해자-피해자 주장은 편들기 어렵다.

부족하고 못난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가운데 더, 더 나빠지는 관계가 있고.

허물도 많고 모자라지만 그래도 마음이 따뜻하다면 서로 좋게 관계를 풀어나가면서 튼튼하고 건강한 인연을 이루기도 있는데.

모든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로 부- 자식 또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이니

어느 한쪽의 말만 들어서는 모른다, 가 현재 내 입장이다.

그래서 지금 읽는 소설처럼 누구는 가해만 하고 누구는 그저 피해만 입는다는 설정은 좀 불편하다.


하지만 정말 나쁜 사람이 있고

하필 그런 사람이 자기 부모여서.

나쁜 부모의 순해빠진 자식이라는 온전히 가해와 피해의 관계도 엄연한 현실이라,

자식을 착취하는 부모의 자식은 어떻게 해야 파국이 오기 전에 이런

악마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싶어졌다.


어쨌든 이 소설은 읽기에 불편하고,

작품적으로 봐도 많이 미숙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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