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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May 02. 2024

잔인한 봄

끄적끄적

호흡기 환자에 기온 변화의 매 순간 탈이 나는 체질을 가진 사람으로서 어느 날씨인들 편하겠냐만.

그중에서도 봄이 가장 힘들다.

황사에, 미세먼지에, 들쭉날쭉한 기온 변화까지,

유난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내 은 모든 자극에 히스테릭하게 반응하면서 나를 괴롭힌다.


더해서 이번 봄,

노년기에 들어섰다는 선전포고를 하듯 여기저기 고장 난 내 몸은 병원 순례로 바쁘다.

갱년기를 모르고 지나간 값을 혹독하게 치르는 중인지.



요 며칠 몸이 몹시 안 좋았다.

평소에도 체력이 바닥이라 잠깐 밖에 나갔다 와도 정신이 혼미한데.

어제는 특히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속이 메스껍고 열이 났다.

부작용 때문에 진통제나 해열제를 쓰지 못하는 나는.

괴로움으로 눕지도 앉지도 못해, 

가만히 쪼그리고 앉아서 눈을 꼭 감고 머리를 침대에 기대 있던가.

답답하면 방을 나서 벽에 기대 쪼그리던가.

약을 먹어야 하니 냉장고를 뒤적이다 고통으로 쪼그려 앉아 아일랜드에 몸을 기댔다.

견디는 수밖에.


이렇게 몸이 괴로울 때 나는 양약을 쓰지 못하니 우황청심환을 먹는데,

이게 약간 이완 효과는 있다.

어제는 갖고 있는 우황청심환이 없어서 차선책으로 따끈한 물을 몸에 뒤집어쓰고.

매실액을 진하게 타먹었다.

그러면서 가만히 원인을 분석해 보니,

어제 아침에 밀크티를 진하게 끓여 먹은 게 떠오르네.

작년에 커피 끓여서 두 잔 연거푸 먹었다가 탈이 난 후로 한동안 카페인 음료를 전혀 먹지 않았는데.

슬금슬금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다가 어쩌다 한 번 아메리카노를 마셔봤고.

일주일쯤 전부터 매일 밀크티를 끓여마시더니, 결국.


고통스러운 몸에서 주의를 돌리느라 책을 읽었다.

내용은 재미있는데 몇 장 읽다 머리를 움켜잡고.

또 몇 장 읽다 배를 쥐어짜고.

휴대폰을 더듬어 무료 게임을 하다가 쇼핑 사이트를 돌아다니게 됐지.

모르는 사이트에서 쨍한 색상의 헝겊 가방 하나 질렀다.

가방에 붙일 작은 코르사주도 더해서.

물건 고르고 결제하는 동안 통증을 잊었다.



몸이 말끔하지 않아 오늘 치과와 물리치료받으러 다니는 동안 더우면서 춥고,

다리는 후들거렸지만.

깊은 밤 물건 사느라 주의가 분산되는 동안 몸의 고통이 고비를 넘긴 건 확실하다.


이런,

쇼핑이 약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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