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하는 자>,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박인원 옮김, 문학동네,
오스트리아에서 출생하여 인생의 대부분을 오스트리아에서 살아간 것으로 보이는 작가는,
오스트리아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소설은 예전에 읽은 기억이 있으나 별다른 감상은 남지 않았었다.
이번에 읽어보니 작가의 의도에 반드시 걸맞은 것은 아닐지 몰라도
그동안 살아온 나름의 경험으로 끄덕여지는 바가 있다.
소설은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면서 예술과 천재를 논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은 보편적인 인간의 이야기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굳이 천재를 거론한 것은 글의 주제를 뚜렷하게 그려내고자 하는 의도였겠지.
소설 속 화자와 친구 베르트하이머는 모두 피아노를 전공한 학생이었다.
이들은 꽤나 각광받던 음대생 시절 캐나다에서 온 '글렌 굴드'라는 타고난 천재를 만나게 되고,
천재의 재능 앞에서 스스로 피아노를 버린다.
위대한 예술가를 꿈꾸었던 이들은 자신들이 결코 글렌 굴드의 재능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엄연한 진실 앞에서 아예 음악을 포기한 것이다.
화자는 좋은 조건을 가졌음에도 스스로 끝없는 불행으로 기어들어간 친구 베르트하이머에 대해,
그의 죽음을 겪으면서 다음과 같은 이해를 갖게 된다.
베르트하이머는 평생 계속되는 절망에 이를 정도로 다른 사람이기를, 즉 자기가 봤을 때 삶이 순탄하고 잘 풀리는 사람이기를 원했어, 난 생각했다. 베르트하이머는 글렌 굴드이기를 원했고 호로비츠이기를 원했고, 구스타프 말러나 알반 베르크이길 원했어. 절망하지 않으려면 스스로를 유일무이한 존재로 여기고 또 그래야만 하는데 베르트하이머는 그럴 줄 몰랐던 거야, 난 생각했다.
(91, 92쪽)
글렌 굴드가 갑자기 사망하고 베르트하이머가 자살하여 세 친구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신은,
그렇다고 우리가 항상 공부만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난 생각했다. 오로지 생각만 하고 생각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세계를 관조하는 일에 우리 자신을 내맡기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지, 난 생각했다.
(52쪽)
자신에 대한 기대라든가 꿈이 삶의 방향을 가리키고 활기차게 살아가는 원동력이 될 수 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자신이라는 존재가 확실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자신의 내면은 허약한데 꿈만 크다면,
그 꿈은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한편,
꿈과 현실의 간극을 남 탓으로 원망하며 절망 속으로 빠져들게 할 수 있다.
꿈이 자신을 키워주는 대신 불행을 몰고 오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 꿈이라는 게 베르트하이머처럼 근사해 보이는 누군가를 흉내 내려는 허영이나 경쟁심이라면,
자신이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오직 시기심에 불타는 겁 많은 허약한 욕심꾼으로 몰락해 가겠지.
꿈이 자신을 북돋우는 힘이 되도록 할 것.
결코 자신을 몰아대는 채찍질만 하게끔 두지 말기.
1931년 생인 작가가 1983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생의 흐름에 내맡길 수 있는 담담함을 깨달을 나이.
누구의 인생이든 욕심대로만 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