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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May 25. 2024

사적인 공간

끄적끄적

유튜브를 돌아다니다가 노인 문제를 다룬 프로그램을 보았다.

고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극소수 고급 실버타운이 아니라면,

스스로 생활을 꾸려갈 수 없는,

그러나 아직 움직일 수는 있는 노인이 갈 만한 시설은 요양원이나 양로원이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노인이 많고 시설이나 비용은 넉넉하지 않기에,

노인들은 시설에서 달랑 침대 하나와 수납장 하나에 몸을 의탁한다.

오직 가성비만 있는 지극히 삭막한 방에는 네 개 이상의 침대와 옷장들이 주르르 놓여있고.

복도에서 문을 열면 내부가 활짝 드러나는 구조라서 사적인 공간이라 할 만한 곳은 전혀 없다.


지금 노인 세대는 대체로 형제 많은 집에서 태어나 형제들과 방을 나눠 쓰다가,

한 반에 7~80명씩 들어가던 콩나물시루 같은 학교에 다니고.

남자라면 마찬가지인 군대를 다녀왔으며.

그러다 결혼해서는 또 좁은 집에서 아이 낳고 키우는 동안 평생 자기만의 공간이란 가져보지 못한 사람이 대다수라.

어쩌면 개인 공간에 대한 갈망이 더 강할 수도 있고.

어쩌면 개인적인 공간이라는 감수성조차 형성되지 못했을  수도 있는데.

이는 베이비붐 세대인 우리 또래도 그리 다르지는 않기에

우리 세대도 지금 고령층과 크게 다르지 않은 노년기를 보내게 될 것이다.


그러다 출산율이 툭 떨어지는 세대에 와서야 노인 시설이 남아돌면 풍경이 달라지겠지.

그 세대는 개인 공간에 대한 요구도 거셀 것이라 서구처럼 한 사람이 방 하나씩을 차지할 수 있겠다.



자라면서 성격이나 태도를 형성하는 데는 수많은 요인들이 있겠는데.

60년 넘게 살아온 내가 보기에는 사람 성향은 타고난 기질이 반 이상인 듯하고.

환경적인 요인으로 부모, 형제, 사회 같은 수많은 변수가 있는데.

몸담은 공간 역시 큰 역할을 할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북적북적 형제들이 한 방, 한 이불에서 자라는 환경과,

생후 3개월부터 혼자 자기 방에서 자라나는 아이가 느끼는 공간에 대한 인식이 같을 수가 있을까?

성격이나 태도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생전 처음 보는 여러 명이 한 공간에서 하루 종일, 일 년 열두 달을 살아가면 갈등이 없을 수가 없겠고.

동시에 서로 의지하는 부분이 생길 수도 있겠는데.

어디에나 있는 이상한 사람들과,

또는 정말 성향이 다른 사람과 한 공간을 써야 한다면.

그것도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다면.


그것 참 큰일이겠다.

우리 집 형제가 성격도, 기질도 다 제각각이어서 그 고충을 잘 안다.

내 방이 있었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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