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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May 30. 2024

오랜만에 라디오

끄적끄적

심심해서 쇼핑앱들을 돌아다니다가 라디오 항목을 보게 되었다.

작은 라디오는 '재난용' 이라든가,

'낚시 갈 때' 뭐 이런 광고 문구를 달고 있다.

내 유년 시절, 우리 집에 있었던 작은 라디오가 떠올랐다.

'트랜지스터 라디오'라 불리던,

우리 아버지가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실 때 딸려온,

고동색 가족 케이스를 덮고 있던 라디오.

잘 들리다가도 지지직거려서 종종 안테나를 쭉 빼거나 위치를 바꿔야 했지.


10대, 20대에는 내 방에서 혼자 카세트 라디오를 들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면서 잠이 들고,

라디오가 들려주는 음악으로 잠이 깼다.

가끔 가요 테이프도 한없이 돌리고 말이지.



지금도 라디오를 들을 수단은 있지만 '라디오'라는 물건이 갖고 싶었다.

늘어나는 짐을 떠올리며 잠시 망설이다 그냥 사기로 한다

저렴한 라디오 군에서는 살짝 비싼 것으로 주문했다.

기능이야 사진으로 봐서는 모르니까 그나마 나은 모양으로 골랐는데 그래도 거슬리는 부분이 있으니.

가격을 못 이기는 디자인에는 눈 딱 감기로 한다.

라디오가 도착해서 포장을 뜯어보니 정말 가볍네.

사용 설명서를 보기도 전에 내 손은 저절로 주파수를  FM 93.1에 맞추고 있었다.

수십 년 지나서도 클래식 음악 방송 93.1은 신체에 각인되었던 거였다.


하루종일 라디오를 틀어놓고 있다.

다른 일에 몰두하거나 몸이 라디오에서 멀어지면 귀에 안 들리다가 어느 순간 문득 음악이 들어온다.

그게 좋다.

아침에 일어나서 켜면 밤에 잠들 때까지 손댈 일이 없다.

때때로 시간을 알려주고 서양 고전부터 국악, 가곡, 오페라 실황까지 다양한 음악을 들려준다.

언제 내 마음에서 떠날지 모르지만 일단은 매우 마음에 든다.

잘 들어야지.



라디오를 들으면서 1960년대의 단순했던 생활이 그리워진다.

어려서 그랬는지 그때 우리는 적은 물건으로도 행복했는데.

지금은 너무 번거롭게 살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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