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차는 달려가고 Jun 04. 2024

옷은 어렵다

끄적끄적

여름에 입는 잠옷이 있다.

얇은 아사에 요란하지 않은 꽃무늬가 있는 살구색 잠옷이다.

옷감의 촉감도 좋고 색상도 예뻐서 덜렁 집었었다.

문제는 이 잠옷이 긴 셔츠 형이라는 거다.

시원한 옷감과 허벅지를 살짝 가리는 길이는 딱 여름용인데,

목덜미에는 옷감을 여러 번 박은 칼라가 붙어있다.

그러니 여름에 입으면 목이 덥다.

요새 입으면 으슬으슬 춥다.

보기만 좋은 잠옷이다.

아직 들고는 있는데 해마다 며칠 입고 서랍에 들어간다.


오래전에 길을 지나다 감각이 뛰어난 옷들을 보고 작은 옷집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오직 흰색, 검은색, 감색, 회색 옷감으로 디자이너가 직접 디자인해 만든 상의만,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파는 곳이었다.

클리어런스 코너에서 검은색 긴팔 티셔츠와 감색 반팔 롱셔츠를 사 왔다.

검은색 긴팔 옷의 경우 재질이 마음에 안 들어 잠시 망설였지만 가격이 싸서 들고 왔지.

내가 키가 크고 (예전에는) 몸이 슬림해서 우리나라에서 만든 옷은 맞지 않았었다.

팔다리가 짱뚱하거나,

허리가 위로 올라붙는다거나.

지금은 우리나라 옷들도 길이가 길어졌지만

예전에는 옷 사이즈가 커져도 가로만 커질 뿐 길이는 아니어서 키가 큰 친구들은 다들 난감해했었다.


그런데 그 가게에서 산 긴팔 셔츠는 내게 딱 맞았다.

소매가 가늘고 길어서 팔에 딱 붙은 소매가 손등까지 덮었다.

그러면서도 몸통은 넉넉하지.

아직 들고는 있다.

내게는 그 옷이 잘 맞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안 맞았을 거 같다.

그러니 디자인이 좋은 데도 클리어런스까지 갔겠지.



옷을 만들어 파는 디자이너는 고려해야 할 점이 무척 많겠다.

대개들 같은 색상, 같은 디자인의 옷들을 사이즈 별로 다 만들어 팔지만.

디자인에 따라서 특정 사이즈만 예쁜 옷들이 있다.

작은 체형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한 옷과,

큰 체격에 어울리게 디자인한 옷은 각각 어울리는 체형을 가진 사람이 입어야 예쁘다.


미국 10대들 사이에 꽤나 인기 있는 이탈리아 브랜드가 있다는데,

마른 체형에 맞는 사이즈 하나만 나온다고 한다.

그 사이즈가 아닌 사람은 속상하겠지만,

일정한 사이즈의, 그 체형에 어울리는 옷만 디자인하면 안 팔리는 재고가 확 줄겠지.

의류회사마다 커다란 체육관 만한 창고에 재고가 천장까지 쌓여있다고 한다.


보기에도 좋고, 고객 취향에도 맞춰야 하며.

더울 때는 시원하게 입을 수 있는 디자인을,

추울 때는 온몸을 따뜻하게 해 줄 옷을 디자인해야 하는 데다가.

원단, 부자재, 기능성에, 고객들이 지불할 수 있는 가격까지 고려해야 하니 옷은 모양만 좋아서는 안 된다.


세상의 모든 패션 디자이너분들,

홧팅!

매거진의 이전글 오랜만에 라디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