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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Jul 16. 2024

키높이 구두

끄적끄적

오랜만에 외출했다.

버스를 타고.

승객이 많아 버스 출입문 앞에 서있다가 목적지에 거의 닿아서 내리려고 카드를 찍었는데,

고만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오네.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뀔 때까지 멈춘 버스의 출입구에 서서 뻘쭘하니 뭘 하겠나.

출입문 유리창으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시선이 닿는 정면에 사진관 쇼윈도가 있었다.

여러 장의 크고 작은 사진들이 붙어있는데

중앙에 있는 커다란 가족사진이 눈에 확 들어온다.

두 남자와 세 여자.

구도나 인물들을 보아 중년의 부모와 결혼한 큰딸 부부, 결혼 안 한 작은 딸로 이루어진 가족의 기녕 사진 같았다.

남자들은 나비넥타이까지 맨 정장 차림이고,

여자들은 평상시에 입지 않을 화려한 옷으로 치장했다.

얼굴에 포샵을 많이 했구나, 하는 소감이 먼저 들었고.

점점 시선이 내려가서 세 여자분 모두 최소 9센티는 넘을 하이힐을 신었구나, 했다가.

그런데 남자들 양복바지가 왜들 이리 짧지? 하다 신발에 시선이 닿으니,

아!

장인과 사위 모두 키높이 구두였다.


몇 달 전 정치인으로 변신한 검찰 출신 어떤 분이 아니었다면

키높이 구두는 상상도 못 하고 바지가 짧다, 에서 나의 소감이 끝났을 거다.

불편해 보이는 몹시 높인 키높이 구두를 평상시에도 애용하신다는 그분 덕분에,

생판 모르는 남의 가족사진에서 키높이 구두를 찾아내게 되었네.



처벌받지 않은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들 중 여러 명이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성형수술을 한 사람도 있단다.

어느 전임 대통령 딸도 굴곡진 인생을 살아가면서 세 번인가 이름을 바꿨다고 했다.

발음 상으로는 비슷하더라만.


나는 심하게, 또 반복적으로 성형수술을 해서 외모를 확 바꾸거나,

더해서 이름까지 바꾸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있다.

자신의 인생이 탐탁지 않을 때 지금까지와 다른 새로운 사람으로 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내면부터 자신을 개혁하려는 각고의 노력은 없이,

뱀이 허물 벗듯 외형만 다른 껍질을 뒤집어쓰는 자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람은 그대로인데 뭐.


그 심리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부정하고 다른 누구로 보이길 바라는 거라면,

그건 더 심각해 보인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을 절대로 사랑하지 못한다.

자신이 부끄러운 사람은 타인의 좋은 점을 인정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깎아내리려 든다.

흔한 말로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거다.



맘에 안 드는 외모나 잊고 싶은 과거를 그냥 가지고 살라는 말이 아니다.

껍데기만이 아니라 나 자신을 발전시켜 내면부터 좋은 사람이 되어야 사람이 달라지는 거다.

내면은 사악함으로 가득한데 이름만 천사로 바꾼다고 천사가 되겠나?

나의 본질, '나'라는 존재 자체를 드높이자.

살짝살짝 의사의 손길이나 법적으로 허용되는 개명의 권리는 쓰더라도,

그것만으로 나의 변신을 그치지 말고,

나의 생각을, 태도를, 언행을 더 좋게 바꿔야 한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불행하다는 기분이 내면에 차있으면,

아무리 가발을 쓰고, 키높이 구두를 신고, 턱을 깎고, 주름을 잡아당겨도,

일시적인 위안이나 될까.

순간이 지나면 다시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근본적으로 나를 존중하지 못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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