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구례 장날

어머니가 차리셨던 밥상

by 기차는 달려가고

* 매일 장 보러 갔지요


우리 어릴 때 어머니는 매일 오후 장을 보러 가셨다.

많은 식구 먹을 음식을 끼니마다 해댔지만 집에는 작은 냉장고만 있었고.

그때는 시장에도 냉장 시설이 잘 되어있지가 않아서 아마 도시에서는 대부분 매일 장을 보러 다녔을 것이다.

아무리 온 나라의 물산이 다 모이는 서울이라도 지금처럼 먼 지역에서 생산된 식재료가 매일매일 서울로 실려오는 시절이 아니었다.

상하기 쉬운 고기나 생선, 신선도가 중요한 채소나 과일은 기껏해야 몇 시간 거리에서 생산된 것들을 밤새 트럭으로 운반에서는 그날그날 팔았다.


또 지금처럼 전국 각지의 특산물이 시장에 다양하게 나오지도 않았다.

새로운 음식, 다른 지역의 음식에 꽤나 개방적인 우리 집 밥상이었지만 낙지, 꼬막, 제피 같은 남도 식품을 그때 집에서는 먹지 않았고.

지금은 좋아하고 잘 먹지만 여전히 집에서 즐겨 쓰는 식재료는 아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와서 (선생님이 집에 오셨던 음악 레슨이 비거나, 마침 읽을 책이 없는 날) 심심해 몸부림치는 딱 그 시간에,

장에 가는 어머니를 따라나선다.

집에서 시장까지는 개천을 따라가는 지름길로 10분 남짓 거리였는데,

열 살쯤의 나는 앞에서 팔랑팔랑 뛰어가다가 잠시 멈춰 숨을 고르면서 느릿느릿 걸어오시는 어머니를 기다렸다.


시장에 들어서면 좁은 닭장 속의 닭들은 퍼덕거리며 깃털을 날리고.

푸성귀 이파리가 널린 땅바닥은 질척거린다.

커다란 얼음 위에 얹힌 비릿한 생선들.

붉은 등의 정육점에는 더 붉고 커다란 고깃덩어리가 갈고리에 매달려 있고.

그 앞 "덴뿌라 가게"에서는 팔팔 끓는 기름통에 들어간 반죽이 파바박 끓어 금세 어묵이 되어 나왔다.

기계에서 빠져나온 머리카락 같은 부드럽고 긴 국수는 가게 앞 막대기에 나란히 걸리는데,

착착 절도 있는 아저씨 손놀림이 얼마나 신기한지 나는 저만치 가는 엄마를 따라가는 것도 잊고는 입을 벌려 헤, 정신없이 쳐다보았다.

과일 전에는 색색의 과일들이 층층이 쌓여있고.

채소가게, 두부집, 고구마, 감자, 퀴퀴한 건어물 가게, 떡집, 순대집, 엿 가게, 찐 옥수수, 신발가게.

맛있는 음식들이 썩어가는, 익어가는, 말라가는, 갖가지 냄새가 온갖 소음들과 함께 시장 안에 고여있었다.

시장 상가들은 1층이라기엔 높고 2층은 안 되는 가게들이 연이어 붙어있었는데.

가게 앞 통로까지 물건을 채워놓고 팔면서 가게에서는 살림을 살기도 해서,

가게 깊숙한 쪽 따뜻한 구들에는 때 묻은 이불을 둘둘 만 아이들이 숙제를 하고 있기도 했다.

그 사이 조금이라도 빈 땅이 있으면 노천 땡볕에 물건을 편 아주머니들이 서로 내가 질세라 목청을 드높이는데.

깎아 주세요, 더 주세요, 실랑이를 벌이나 싶다가는 금세 언성이 높아져 핏대를 세우며 험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지.

이런 시각과 후각과 청각에 더 해,

툭툭 치며 지나가는 사람, 좁은 통로를 요리조리 밀고 가는 손수레, 무너질 듯 높이 쌓인 그릇가게까지.

달달한 꽈배기 하나 입에 문 나는 온 감각으로 쏟아져 내리는 벅찬 자극에 넋을 놓았다.


우리 집은 먹는 입이 많으니 물건도 많이 사서 어머니는 시장에서 대접을 받았다.

가게 앞을 지나노라면 주인들이 모두 나와 사모님, 사모님, 인사를 하고 오늘 좋은 물건이 나왔다며 물건을 들어 보인다.

나는 우리에게 쏟아지는 과한 시선과 호칭이 부끄러웠는데,

어머니도 남에게 대접받기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어서 굽실거리며 넘치게 인사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민망해하셨다.


명절을 앞두거나 손님을 치를 때면 어머니는 도매시장으로 가셨다.

노량진보다 먼저 서울역 뒤 서부역 근방에 있었던 수산시장으로 이른 새벽에 장 보러 다녔던 시절도 있었고.

건어물은 중부시장, 고기는 마장동, 때로는 경동시장.

생선은 짝으로,

쇠고기는 사골에 꼬리에 등심에 양지머리에, 부위별로 골고루 한 포대.

나물은 관으로.

그렇게 식당에서 사는 것만큼이나 많은 장을 보았었지.

간식으로 도넛이나 튀김을 한창 먹었을 때 우리 집에는 밀가루는 포대로, 식용유는 한 말들이 깡통이 배달되었다.


그렇게 큰 장을 보면 연근은 피클을 담고.

생선을 넣어 쌈장도 한 솥 끓여두고.

자잘한 게는 팔팔 끓인 간장물 세례를 받았다(불쌍해).

겨울에는 짭짤한 닭조림을 몇 통씩 만들어 바깥에 얼게 내다 두었다가 (상에 오르기도 전) 밤참으로 다 먹어치웠다.

팔순을 넘어서도 어머니는 큰 장 보던 습관을 못 버려 여행 가셔서는 그 지방 특산물을 대량으로 보내시는데.

나누고, 먹고, 보관하다 결국은 죄책감을 느끼면서 버리기까지.

그 뒤처리는 딸이 도맡아야 했으니 제발 그만 하시라 말려도 시장에만 가면 깜빡 잊어버리시던 어머니.

이젠 그것도 추억이 되었구나.



* 오일장의 추억


90년대 초에 내가 구례로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오일장에 들렀었다.

그날 기억이 좋아서 나중에 어머니를 모시고 갔는데,

당연히 우리 어머니가 구례 오일장을 너무나 좋아하시는 바람에,

몇 년 동안, 명절을 앞두거나 김장철이거나 할 때 구례까지 가서 큰 장을 보았다.

오후에 집을 떠나 남원에서 자고 아침 일찍 구례에 가서 장을 보고 슬렁슬렁 서울로 돌아오는 놀이 같은 일정이었다.


서울을 떠나 어디론가 가는 것만도 좋았는데,

해 질 무렵 남원 땅에 들어서면 넉넉하고 한가로운 기분이 되었다.

간간한 밑반찬이 푸짐한 밥상을 받고 어스름한 달그림자 아래 천천히 소도시를 걷노라면 내가 떠나온 서울의 소란스러움은 아득히 멀어졌다.

그렇게 지리산 자락 남원에서부터 계절을, 자연을 푹 느끼면서 다음날 이른 아침 서둘러 길을 떠난다.

막 해가 떠오르는 굽이굽이 울창한 숲길은 호젓하고.

깊숙이 들이마시는 차가운 공기는 상쾌하다.

짙푸른 산등성이에는 희고 맑은 안개가 피어오르고.

눈앞에 높은 등성이가 가로막히는 산길을 구비구비 돌아가면 갑자기 시야가 툭 트이면서.

아, 지리산 셀 수 없는 봉우리들은 끝 간 데 없이 늘어서 있는데.

흐리고 짙고 푸르고 옅은 지리산의 봉우리들이 몇 겹으로 늘어서서는,

구름 위에 뜬 환영처럼 옆으로 옆으로 겹쳐 있었다.

나는 그 서늘하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진다.

홀연히 산속으로 사라진 들 뭐가 아쉬울까.

그렇게 벅찬 기분으로 높은 산을 돌아 돌아 내려오면 들판으로 너른 강이 흐른다.

산자락에는 노란 산수유가 툭툭 꽃망울을 터트리고.

아름다운 섬진강을 들판을 돌아 느릿느릿 흘러가니.


사진전에서 1920년대 구례 장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그때도 구례장 풍경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벽 없는 기둥에 함석지붕 올린 길쭉한 상가가 늘어서 있었고.

켜켜이 물건 쌓인 대목 장날,

갓 쓰고 흰 두루마기를 입은 남자들이 북적거렸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나 내가 갔을 때에도 구례 장날 풍경은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

어릴 적 동네 시장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정육점에는 소, 돼지 붉은 고기 덩어리들이 천장 고리에 줄줄이 매달려 있고.

한우라는 증명인 듯 소꼬리에는 누런 털을 그대로 붙이고 있었다.

고기를 청하면 달라는만큼 한 칼에 딱 잘라 보였던 전문가 솜씨.

그 옆 닭 가게에는 핏물이 고인 통나무 도마 곁으로 붉은 벼슬이 선명한 토종닭들이 철망 안에서 자신의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멀뚱멀뚱 사람들을 쳐다보다 종종걸음을 치고.

일일이 사람의 수고를 받아 자랐을 쌀이며 콩, 팥 같은 곡식들이 차르르 윤기를 흘리며 수북이 쌓여 서울에서는 사라진 말이나 되로 달아 팔았다.

남쪽 바다가 가까우니 해산물도 풍성했다.

펄펄 뛰는 생물, 말린 것, 절인 것, 데친 것.

트럭으로 물건을 부리는 장사꾼 뿐인가.

바지런한 할머니들이 산을 오르며 손수 뜯어말린 산나물에 텃밭에서 키운 채소.

뜰에서 오래도록 함께 했을 나무들이 나누어주는 밤에, 대추에, 곶감까지.

쪼그리고 앉아 신문지에 얹은 만큼이 장사 밑천이어서,

소복이 쌓인 물건에 눈길을 줄라 치면 시무룩해 있던 할머니들은 갑자기 활기를 띄었다.

물건에 담긴 사연을 풀어내다 비싸다는 손님의 야박한 말 한마디에 금방 마음을 상하기도 하고,

나물 좋다는 칭찬에 금세 화색이 돌기도 해서.

한 움큼 더 달라커니, 덤이니 에누리니 밀당을 하다가는 물건이 담긴 신문지를 톡톡 털며 에라, 떨이닷! 호쾌하게 외치셨다.


명절을 앞둔 장 초입의 유과 가게에는 산더미만큼 유과가 쌓여 신바람이 났는데,

플라스틱 통으로 대용하는 그 집 돈통에는 지폐가 넘쳐났다.

장날에는 대장간도 열려서 나는 가게 앞에 쪼그리고 앉아 쉭쉭 불길에 벼려지는 시뻘건 날이 칙, 찬물에 들어가 식는, 그 반복되는 과정을 지루한 줄 모르고 구경했었지.

시장 안쪽 공터에는 옷장수들이 옷이랑 덧버선 같은 것들을 알록달록 하게 늘어놓고 할머니들을 불러 모으고.

플라스틱 바가지며 슬리퍼 장수도 한껏 목청을 높였다.

그 곁으로는 맑은 장국에 말아 김가루를 뿌린 국수.

새알심이 동동 뜨는 걸쭉한 팥죽을 파는 좌판들이 늘어서 있어서

검은 비닐봉지를 손에 든 할아버지들과 함께 기다란 긴 나무 의자에 앉아 허기를 채우고 아픈 다리도 쉬었다.

고기나 곡식은 한동안 먹을 만큼 끙끙거리며 차로 날랐고,

방앗간에 줄 서 기다렸다가 깨를 볶고 참기름, 들기름을 짜고, 고춧가루도 빻았다.

서울까지 괜찮을지를 자꾸 묻다가는 생선도 사고 말아서 차에는 퀴퀴한 냄새가 배고 말았는데.

어느 겨울에는 꿩을 열 마리 넘게 사 와서는 뼛가루가 오돌오돌 씹히는 꿩탕, 꿩만두를 어머니 유년의 기억이 담긴 외할아버지 사냥 추억을 들으며 겨우내 먹었다.

장을 보고 나서는 겨울에는 가까운 식당에서 굴 떡국을 먹었고 한 번은 다른 장으로 유명하다는 전라도 순대를 먹으러 간 적도 있었다.

그리고도 손에 쥔 차진 떡 한 봉지는 서울로 오는 내내 먹었다.


고개를 들면 법석거리는 시장 위로 넓고 크고 깊은 푸른 지리산이.

더 위로는 파랗고 시리던 하늘이.

들이쉬면 가슴속 깊숙이까지 구석구석 퍼져나가는 청명한 공기와.

바람에 실려온 풀향기가 마음을 벅차게 했던 구례 장.

높이 쌓인 풍성한 먹거리들과 그 사이를 누비며 물건을 살피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장을 보던 평온했던 시절.

그 파란 하늘을 이고 넓고 깊은 지리산 품에 담겨있던 구례 장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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