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차는 달려가고 Nov 25. 2024

휴대폰 잃어버린 이야기

끄적끄적

얼마 전 휴대폰을 잃어버렸다.

이런...


가끔 외출하는 집순이는 미루고 미루다가 한번 나갈 때 몰아서 일을 처리한다.

몹시 분주하게 돌아다녀야 한다.

어느 금요일 오후,

며칠 만에 집을 나선다고 이른 점심을 든든하게 먹고,

빠방 하게 부른 배 앞으로 어깨에 맨 가방을 둘렀다.

가방 앞 주머니에는 휴대폰과 오늘 해치울 숙제를 주르르 적은 메모지를 끼워 넣었지.


몇 군데 들르면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물건을 사고 구경도 했다.

중간중간 메모를 확인하면서 퇴근길 차가 밀리기 전에 집에 들어오려니 얼마나 바쁘겠나.

그렇게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무거운 장바구니를 내려놓고 후다닥 저녁을 차려먹었다.

밤이 되어 집을 싹 치우고 씻고 자려고 누웠는데,

잠들기 전에 오늘의 휴대폰을 정리해야지.

엉?

휴대폰이 없네!



집에 있어도 휴대폰을 잘 들여다보지 않고

전화번호를 연결하지 않은 태블릿을 주로 쓴다.

외출할 때 가방에 휴대폰을 집어넣으면 집에 도착할 때까지 거의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지도 않는다.

평소 내게 전화도 오지 않으며 개인적인 문자는 어쩌다 들어올 뿐.

나 역시 전화할 일이 없다.

가끔 문자로 일을 처리할 뿐이다.

매일 밤 자리에 누워 그날 들어온 수많은 광고를 지운다.

그런 생활 방식이다.

휴대폰 찾기, 기능 같은 건 써본 적이 없다.


내 휴대폰은 저렴한 보급형이라 누가 가져갈 일은 없으니 내 동선만 따라가면 휴대폰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오늘 어디 갔더라?

응, 머릿속이 하얗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잠이 싹 달아나 벌떡 일어나 앉은 나는 쓰던 휴대폰을 포기하고 새것으로 바꿀까, 잠시 생각했는데.

휴대폰을 바꾸면 온갖 앱을 새로 깔고,

 많은 사이트의 로그인을 다시 하고,

본인 확인을 하는 등등의 지난한 절차를 떠올리니.

늘 자동로그인을 해서 비번은 물론 아이디도 기억나지 않는데?

하지만 바꿀 때가 된 낡은 휴대폰이고,

만약 길에 흘렸다면 찾는 과정이 더 귀찮아질 거라 어쩔까 갈등하다가.

외출과 스트레스로 지금 나는 몹시 피로하니

주말 이틀 쉬면서 결정하자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결국 화요일에 휴대폰은 찾았다.

물건 사면서 쓰지도 않을 포인트 받겠다고 휴대폰을 꺼냈다는 걸,

월요일에 지난 금요일과 똑같은 옷차림으로 그날의 동선을 따라가던 도중에 기억이 났다.

하지만 그 가게는 월요일이 쉬는 날이었으니.

월요일도 휴대폰 없이 지내고 화요일에 가게 갔더니 사장님이 웃으시며 휴대폰을 내주시더라.

카운터 근처에 놓여있는 휴대폰을 나중에 발견해서 감시 카메라 돌려보고 나를 기다리셨다고.

그날 계산하면서 포인트 받겠다고 카운터 앞에서 휴대폰까지 꺼내 계산을 마치고,

다음 손님이 있으니 내 소지품을 끌어안고 자리를 옆으로 옮겨,

지갑에 카드 집어넣고 물건 챙기고 가방 둘러매면서 휴대폰은 그 자리에 그냥 두고 나온 것이었다.


휴대폰은 쉽게 찾았지만.

휴대폰 없이 지낸 며칠 동안 휴대폰을 노상 쓰지 않는 나 같은 사람도,

일상생활에서 휴대폰에 상당히 의존한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무엇보다 전화를 쓸 수 없으니 전화로 확인할 수 있는 일도 직접 갈 수밖에 없었다.

세상과 단절된 기분이었다.

혹시 누가 내게 전화했으면 어쩌지? 걱정까지 들었다.

전화 와도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는 사람이 말입니다.

휴대폰 의존도를 낮춰야겠다고 마음먹었음.

아이디와 비번을 수첩에 적어두겠다고 결심은 했는데 언제 실행할지는 모르겠다.



그 며칠 동안 쌓인 광고는 분량이 엄청났다.

하나하나 들여다볼 엄두가 나지 않아 싹 다 지워버릴까, 했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하면서 하나하나 확인하고 지우는데 스트레스 지수가 폭발하더라.

며칠 걸렸다.

그중에는 내 안부를 묻는 연락도 있었는데,

광고 지우는데 지쳐서 아직 답을 못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니멀과 대도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