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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떠나기 전

끄적끄적

by 기차는 달려가고

살림과 전혀 상관없던 홀가분한 젊은 시절에는,

여행 떠날 때 내 생각만 하면 됐었다.

어디를 어떻게 다닐지,

비용은 얼마나 들지를 계산하고.

어떤 옷을 가져갈까, 궁리하면서 짐을 꾸렸다.

흐트러진 방과 헝클어진 세탁물은 그대로 둔 채 몸만 빠져나갔지.


긴 여행에서 지쳐 돌아오면 어머니는 공항에서 나를 맞아주셨다.

집에 도착하면 말끔하게 정돈된 방이,

모락모락 김 오르는 맛있는 밥상이 나를 반겨주었지.

아우 맛있어,

역시 우리 집이 최고야! 하면서도,

어머니께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았네.



이제 나는 모든 걸 스스로 해야 한다.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정리된 방과 따끈한 집밥을 여전히 갈구하는 나는,

집을 떠나기 전 스스로 그것들을 준비해야 하니.

쓰레기통을 깨끗이 비우고,

싱크대는 물기까지 닦아내며.

차곡차곡 을 정돈하고,

냉장고는 비우는 동시에 집에 돌아왔을 때 금방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음식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

침대와 의자들에는 하얀 시트를 덮어둔다.

시트를 걷어내고 이불커버와 침대 시트를 새것으로 바꾸면 산뜻하게 편히 잠들 수 있거든.


이상하게 집을 떠나면 집이 무사한지 문득문득 걱정이 밀려든다.

플러그는 다 빼고 왔던가?, 하는 조바심 같은.

혼자 있는 집은 얼마나 썰렁할까.

오늘은 올까?

내일은 꼭 오겠지?, 하면서

얼른 돌아와 집에 온기를 불어넣어 줄 주인을 기다릴지도 몰라.

그래서 내가 현관문을 들어와서는

창문을 활짝 열어 고여있는 무거운 공기를 내보내고.

난방을 하고,

보글보글 음식을 끓여서 밥상을 차리면.

그렇게 다시 집이 활기차지기를 기대하며

나의 귀환을 기다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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