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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 지났다

끄적끄적

by 기차는 달려가고

여행 중이었다.

남쪽 지방을 둘러보겠다고 떠난 길이었다.

남쪽은 서울보다 훨씬 푸근한 날씨였다.


그날은 오후 내내 순천만국가정원- 순천만 습지를 하염없이 걸어 다녔다.

맑은 공기에 아름다운 풍경으로 마음이 정화되어서 그저 무념무상.

아, 정말 좋아,를 연발했네.

하도 걸어 피곤해져서는 저녁을 먹고 꼬르륵 잠이 들었다.



밤중에 잠을 깼다.

미처 정신이 들기 전에 습관으로 휴대폰을 열었다.

응? 비상계엄?

의미가 얼른 파악되지 않네.

눈을 비비며, 이게 무슨 일이래?

번쩍 잠이 깨어 휴대폰을 붙들고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을 계속 읽었다.

몇 시간 뒤 상황이 정상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없던 일이 될 수는 없지.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는 걸까.


여행을 이어갈지 서울로 돌아갈지 얼른 판단이 서지 않았다.

다음날,

밤새 잠을 못 자고 일어나 아침 늦게 벌교로 갔다.

벌교 장날이었거든.

할머니들은 온갖 채소와 해산물로 좌판을 펼치고

역 앞 해산물 가게들에는 꼬막과 석화 꾸러미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아, 맛있겠다.

겨울 햇살이 내리쪼이는 벌교읍은 조용하고 한산해서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시장에만 사람들이 있었다.

시간이 늦어서인지 사려는 고객은 드물고 팔려는 상인들만 묵묵히 자리를 지키시네.

지방을 다녀보면 재래시장 상인들은 모두 노인들이시다.

이 세대가 더 이상 일을 못하게 되면 시장은 문을 닫겠지.


숙소에 돌아와서 이럴까 저럴까 갈등했는데.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 않아서 여행을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일단은 마음을 먹었다.

최종 결정은 다음날 아침에 상황을 보기로 하고,

서울행 기차 편은 자리가 없어서 고속버스 시간표와 남은 좌석을 확인만 해 두었다.



결국 여행을 중단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언제 다시 여행을 떠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상황이 안정되어야 홀가분하게 여행을 다닐 텐데요.


일이 벌어지고 일주일이 지났다.

지난 몇 년 동안 기막힌 행태를 많이 보아와서 새삼스럽게 분노가 치밀 건 없는데.

와르르, 이렇게 한꺼번에 무너지는구나, 싶다.

거짓과 탐욕으로 쌓은 사악한 탑이 결국은 자멸하고 있다.

억울하기 이를 데 없는 고난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그 부당성을 계속 지적해 온 사람들의 노고 덕분인데,

최종적인 한 방은 그들의 자살골이다.

자기 죄를 잘 알고 있으니 들통날까 두려웠겠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야당 정치인들,

이 추운 날 집회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시민 여러분들 덕분에 좋은 결과 기대합니다.

마무리까지 잘하고 적폐들이 사라진 새로운 세상,

정말 좋은 세상 한번 만들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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