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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 속 집순이

끄적끄적

by 기차는 달려가고

며칠 동안 한파가 이어진다는 예보가 있었다.

장마 때는 비 때문에,

한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겨울에는 추위가 무서워 집을 나서지 못하는 이 평생 집순이는,

명절 연휴 뒤끝에 잔뜩 늘어져있던 몸을 흐느적흐느적 겨우 일으켰다.

한파에 대비해야 하니 집안의 빨래거리를 끌어모아 세탁기를 돌렸고,

설날 음식을 다 먹었으니 먹을거리도 보충할 겸 집을 나섰다.


아직은 푸근하던 일요일 오후,

도서관에 가서 읽은 책을 반납하고 몇 권을 또 빌렸다.

마트에 들러서 계란과 만두, 과일을 고르고,

몇 봉지 초콜릿과 아이스크림 한 통을 샀다.

당분간 동굴에 파묻힐 거라 식량이 필요하거든.



사실 집에 있으면 바깥 날씨는 그리 실감 나지 않는다.

난방을 일정한 온도에 맞춰 놓으니 실내온도는 변동이 없고,

집안에서 하는 일이야 일 년 열두 달 변화가 없지.

책을 읽다가 밥 차려먹고,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면서 초콜릿 한 봉지를 다 비우고 말았다.

유튜브 보다가 좀 걷기 운동을 한다.

으쌰으쌰 몸도 쭉쭉 펴주고요.

아이스크림도 퍼먹습니다.

청소할 때 창문을 활짝 여는 습관이라 그때는 추위를 체감한다.

창문을 여는 동시에 확 밀려오는 한기와 바람.

어이쿠, 역시 나는 밖에 못 나가겠군.

그렇게 종일 뭉기적거리며 미루고 또 미루다가 밤이 되어서야 씻어요.

음, 목욕탕은 춥군요.

그리고 따뜻한 이불속으로.

아이 좋아라.



그, 런, 데.

아직 한파가 가시지 않는 내일,

반드시 나가야 할 일이 있다.

날짜를 바꿀 수 없을까, 궁리해 봤지만.

그냥 나가기로.

막상 나가보면 이 정도 추위쯤에는 여전히 세상이 돌아가고,

나도 그 무리에 끼어들 거라는 사실을 안다.

볼 일만 딱 보고 들어올 건지,

나간 김에 전시회까지 보고 올 건지 아직도 생각 중이다.

애매한 거리라서 걸어야 하니 말입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먹을거리도 몇 가지 사 와야겠고.


가장 따뜻할 조합으로 옷과 신발을 꺼내다가,

나는 뭐 이리 피하는 게 많을까, 약간 짜증이 나네.

이 정도 추위쯤이야

의젓하게 겪어내도 괜찮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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