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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다 포기한 여행지들

끄적끄적

by 기차는 달려가고

책을 읽을 때 나는 한 가지 주제에 꽂히면 줄줄이 그 주제와 관련한 책을 찾아 읽는다.

그렇게 파고들다가는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주제로 옮겨가지.

이것저것 호기심이 많아서 꽤 다양한 책들을 읽었는데

여행을 좋아하니 특정 장소를 다루는 책들도 늘 읽는다.

대개의 경우 책을 찾아 읽다 보면 그곳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더 많아지니 언젠가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커지는데,

몇 곳은 책 읽고 유튜브 둘러보다가 버킷리스트에서 빠지기도 한다.

실컷 읽고 나니

이젠 됐다, 벌써 다녀온 기분이야, 하는 경우가 있고,

관심은 가지만 나한테는 맞지 않겠는걸, 해서 마음이 멀어진 경우도 있다.



예전, 그러니까 30여 년 전쯤 유시화 시인이 일으킨 인도 여행 붐이 뜨기 시작했을 때,

나도 인도에 끌려서 인도에 관한 책을 모조리 찾아 읽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 더위와 소음과 먼지와 냄새가 나를 감싸는 기분이라...

지금도 인도를 다루는 콘텐츠가 눈에 띄면 보기는 하는데 직접 갈 엄두는 나지 않는다.

혹시 어딘가를 향할 때 경유지로 며칠, 차 안에서 구경하는 건 몰라도.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로망이었던 적도 있었다.

책을 수없는 찾아 읽었다.

그때 베를린에 있던 조카에게 쉬엄쉬엄 한 보름 걸려서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고 너 만나러 가고 싶다고 말했더니,

왜? 비행기 타고 후딱 오는 게 낫지 않아?, 하더라.

책을 읽을수록 다인실은 냄새나고 시끄럽고.

비싼 좌석은 혼자 여행하기에는 오히려 위험해 보이고.

무엇보다 바깥 풍경을 바라보면서 혼자 조용히 지낼 분위기가 결코 아니라는 점에서 마음 접었다.

사람들과 끊임없이 이야기와 친분을 나누는 곳이라,

지금의 내게는 너무 피로해.

포기할 때까지 오래 걸렸음.


몇 날 며칠씩 히말라야를 걷기도 내가 꿈꾸는 일이다.

끝없이 솟아있는 하얀 설산 속에 내가 담겨있다니 얼마나 감격스러울까?

오직 걷는 행위에만 집중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산, 산들이라니.

최근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히말라야에 도전하더라.

산을 오를수록 숙소는 춥고, 식사는 부실하며, 제대로 씻지도 못한다.

책으로만 행복하련다.

미련은 있지만 포기.


아프리카에 꽂힌 적도 있었다.

가이드 인솔 하에 트럭을 개조한 차를 타고 직접 장을 보고 밥 만들어 먹으면서 이곳저곳을 여행하는 트럭여행이 재미있게 보였다.

오, 알고 보니 설거지 엄청 더럽고요,

실내 바닥에는 쓰레기가 쌓이고요.

빌려 쓰는 텐트는 냄새나고,

포장 안 된 길을 달리는 트럭의 승차감은 멀미가 나고,

먼지도 엄청나다고.

같은 차를 탄 동행들끼리 맞지 않아 벌어지는 신경전도 꽤 있답니다.

책으로 즐거웠음 된 거지 꼭 내가 가야겠나.

풍경은 아쉽지만, 안녕.


언젠가 넓고 넓은 중국을 구석구석 다녀보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북에서 남,

동에서 서.

중국은 사람이 많고 역사가 기니까 담긴 풍경도, 이야기도 엄청 많은 곳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언어 문제,

감시와 통제라는 체제 문제를 겪으면서 혼자 여행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냥 전문가들이 보여주는 콘텐츠에 만족하기로.

여전히 기차를 타고 주마간산하듯 중국을 돌아보고 싶은 꿈은 남아 있다네,

그런데 흡연이 자유로운 분위기여서 기차 안에 담배 냄새가 배어있다는 언급을 본 적이 있다.

흠, 심각하네.


남미 여러 나라도 정말 궁금하다.

그곳 풍경도 보고 싶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떠나 남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는 것만 해도 장시간,

여러 번 비행기를 갈아타야 한다.

도착하면 한 달 이상 몸져누울 판.

앞으로도 책을 찾아 읽기는 하겠지만 내가 직접 남미 나라들에 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무엇보다 크루즈 여행.

한 40년 전쯤,

'사랑의 유람선'인가 하는 미국 드라마가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개인의 해외여행이 금지되어 있던 그때는 크루즈 여행이 잠자고 일어나면 다른 도시라 참 신기해 보이고,

바다를 항해한다는 로망까지 있어서 좋아 보였는데.

노인이 된 지금 내게는 크루즈에서 여행이란 완전 수박 겉핥기이고,

잔뜩 먹고, 먹고 또 먹는 것 말고는 의미가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뱃멀미를 심하게 느끼는 나는 이제 배 타기가 무섭다.



책으로 읽는 세계일주,

재미있어요^^

방에서 다 가능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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