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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라는 늪

끄적끄적

by 기차는 달려가고

사람에게는 폭넓고 깊이 있는 좋은 인간관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배웠다.

주변 사람들과 잘 교류하고 원만하게 지내는 사람이라면 그것으로도 대단하게 평가하지.

더해서 친분을 가진 사람들 중에 사회적으로 성공한 부류라도 있다면 오만 데다 자랑하면서,

자기도 그 성공 그룹인 양 덩달아 으쓱거린다.


학창 시절에 꼭 그런 애들이 있었다.

이른바 집안 좋고(?- 그냥 돈 많아 보이는), 공부도 좀 하면서, 외모도 되는 몇몇 애들만 따라다니면서 안 그런 애들은 상대도 안 하는.

철저히 계급적으로 구분하는 아이들.

심지어 자기도 자신이 무시하는 그런 사람이면서 말이지.

성공하려면 먼저 성공한 이들과 친분을 쌓으라, 는 속물적인 처세술을 추종하는 어린 야심가들이었다.



내 유튜브 알고리즘만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요즘 인간관계의 강박에서 벗어나자, 라든가.

혼자가 좋다, 하는 류의 제목을 가진 콘텐츠가 적지 않게 노출된다.

인간관계는 더 이상 힘이 되거나 위안을 준다기보다 손해를 주기도 하는 부담이다,라는 측면을 강조한다.


젊었을 때는 또래들 모두 앞에 놓인 막연하고 두려운 이 세상이라는 실체를 탐구해야 하는 신참의 입장에 있었고.

그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자신의 앞날에 대한 불안과 부푼 기대라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그렇게 또래들과 교류하고 친분을 나누는 과정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가치관을 형성해 나가는데.

나이가 들면 생각은 이미 굳어졌고 세상에 대한 입장 또한 바뀔 여지가 적다.

꿈은 멀어지고 현실의 무게는 가중되는 복잡한 심정이라,

아마 나와는 처지가 다를 것이라 여겨지는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과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기가 어렵다.

만나는 동안에라도 원만하려면 서로를 치열하게 탐색하고 선을 지켜야 하는 자제력이 요구된다.

그러니 인간관계가 피로하고 지친다.

세상에 벽을 친 외톨이거나 반대로 수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는 인싸거나 할 거 없이,

그 누구도 인간관계가 쉽다거나 좋기만 하다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겉보기에는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사교적인 사람이라도,

친구가 최고라고 굳세게 믿는 사람들도,

때로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힘겨워하고,

이게 맞나, 걱정하면서.

때때로 관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이 들기도 할 것이다.

내 경우, 웃으면서 사람들을 대하지만 속으로는 어느새 그 사람을 판단해 버리고,

그래서 마음으로 상대를 비난하거나 완강하게 벽을 치는 나를 발견하고는 씁쓸해지기도 한다.

그런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더 사람을 피하는 이유도 있다.



지난 세기 프랑스의 지성이었던 롤랑 바르트의 서간집을 읽고 있다.

여러 친구들과 수십 년에 걸쳐 다정한 친분을 이어가면서,

서로의 개인사를 염려하고,

생각을 나누고,

작업에 관한 조언까지 주고받으면서,

서로 발전해 가는 지성들의 관계가 좋아 보였다.


뭐 그렇다 해서 새삼스럽게 누구랑 친분을 갖겠다는 건 아닌데.

혼자 머릿속에서 모래성을 쌓다 허물다 하다 보면 때로 답답할 때가 있긴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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