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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을 애정하여

끄적끄적

by 기차는 달려가고

나는 도시락을 싸는 것도, 도시락을 펴서 먹는 것도 참 좋아한다.

도시락 먹는 재미로 그 지루한 학창 시절을 견뎠지.

지금도 여행 갈 때 먹을 것이 든 식량 주머니는 꼭 들고 다닌다.

도시락 통 모으기도 좋아해서 갖가지 소재의, 별의별 색깔을 한, 각기 다른 모양으로 만들어진 도시락 통들과,

이런저런 물병, 보온병을 한가득 들고 있다.

쓸 일은 거의 없...



화창한 봄날이잖아.

들썩들썩.

도시락 싸들고 숲으로, 들판으로 놀러 나가기 딱 좋은 날씨인데.

혼자, 숲에서 도시락을 펼치기는 좀 그렇지요?

게으른 사람이라 멀리 나가기도 쉽지 않고요.

그래서 보온병에 따끈한 차를 담고 간식이 조금 든 주머니를 가방에 넣어,

둘레길, 자락길 이런 이름이 붙은 안전한 길을 걷다가.

벤치에서 차를 조르르 따라 마시고 초콜릿이나 사탕 몇 알 먹다 오곤 합니다.


그래도 밥을 싸들고 나가고 싶다, 는 미련을 떨칠 수 없어서.

평소에는 도서관에 가면 빌린 책 반납하고,

서가를 쓱 둘러보다가 관심 가는 책, 자세히 살펴보지 않고 냅다 빌려오곤 했는데.

마침 근처에 좋은 산책로가 있고 도시락을 펼칠 만한 깔끔한 휴게실도 갖춘 공공도서관을 떠올리고는,

아침부터 신나게 도시락을 쌌단 말입니다.


두 번 다녀왔는데.

첫 번째는 이단으로 된 넓적한 도시락 통에-

1단은 삶은 계란, 사과, 방울토마토, 전자레인지에 찐 고구마 두어 쪽을 담고.

2단에는 치즈 바케트 두쪽에 아몬드와 소고기 육포를 넣었네.

잎으로 된 녹차와 인스턴트커피는 작은 통에 담고요.

도서관에 정수기가 있으니 작은 보온병과 캠핑용 티타늄 컵만 들고 갔음.


두 번째는 좁고 긴 원통형의 3단 도시락을 가져갖는데.

식사로는 호라산밀을 섞은 밥에,

참기름, 소금, 참깨와 김가루로 볶아서 작은 주먹밥을 만들어,

단짠의 오징어 조림과 함께 넣고.

한 단은 삶은 계란과 전자레인지에 익힌 고구마 두 쪽,

다른 단에는 방울토마토와 오렌지 두 쪽으로 도시락 통을 채워서.

아몬드와 차 종류는 따로 담았어요.

두 번째 갈 때는 보온병 말고 작은 스텐 물병과 다이소에서 산 이중 스텐 물컵을 가져감.

캠핑용 컵이라도 손잡이가 있으면 자리를 차지해서

뜨거운 물을 담아도 맨손으로 잡을 수 있는 이중 스텐 컵이 유용하더라고요.


이것에 더해 수저통, 헝겊 냅킨과 작고 얇은 스텐 쟁반까지 넣고 다니니,

작지 않은 도시락 가방이 꽉 참.

사서 고생하는 중.



집에서 작은 노트북을 쓰다가 도서관 컴퓨터의 큰 모니터에 화면 여러 개를 한꺼번에 띄우니 작업하기 편했고요.

그렇게 1시간 넘게 전자정보실에서 집중하다가 기운 빠져서 휴게실로 와 천천히 도시락 까먹고.

차 마시고.

그렇게 원기충전해서 자료실로 가 찬찬히 살펴보고 고른 책 두어 권 빌려서,

화사하고 활기 넘치는 봄날의 숲을 한 시간쯤 걷다가 집에 오면.

아, 오늘 하루 잘 보냈다, 는 생각으로 뿌듯하답니다.


또 가야지.

장마 오기 전에 열심히 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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