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제주도 구좌 당근을 주문했다.
흙당근.
택배상자를 열었더니 좀 과장하면,
시커먼 화산재 "흙 속에 파묻혔다" 할 만큼 거뭇거뭇한 상자 속에서 신선한 흙냄새가 확 터져 나왔다.
얼마 만에 맡는 진한 흙냄새인지, 감격스러울라 하더라.
킁킁 흙냄새를 실컷 들이마시다가
당근 몇 개 꺼내 솔로 겉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채소 씻는 수세미로 흐르는 물에 박박 씻었다.
선명한 주황색이,
곱고 예쁜 당근이 뽀얗게 모습을 드러냈다.
아, 기분 좋아.
어제는 종일 비가 내렸다.
일기예보로는 오전에 비가 내리다 오후에는 그치고 소나기가 올 수 있다, 정도였는데.
그것만으로도 하필이면 세 가지 일을 몰아서 하기로 해,
서울의 중간 부분 서쪽과 남쪽에 각각 일이 있어 이동 거리가 긴 날이라.
궂은 날씨에는 외출하지 않는 나는 나갈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는데.
도저히 바꿀 수 없는 일정이라,
점심 먹고 집을 나서면서 비가 곧 그치려니, 기대했다.
웬걸.
나가자마자 빗줄기는 폭우로 바뀌어 우산은 큰 역할을 못 했다.
금세 바지가 젖고, 신발이 축축해졌지.
온종일 주룩주룩과 퍼붓기를 반복하면서 비는 참 줄기차더군.
퇴근 시간을 피하느라 일부러 간식을 먹으면서 시간을 기다리고.
가방 속에는 잘 마른 양말 한 켤레가 들어있었지만 바꿔 신을 곳을 못 찾아서,
가져간 수건으로 틈틈이 옷과 가방을 닦아내기만 하다가.
젖은 옷차림으로 불쾌하게 집에 돌아오니.
바닥은 따끈따끈.
공기는 뽀송뽀송.
빈집은 혼자 보금자리 역할을 충실하게 하면서 나를 기다려준 거였다.
고마워.
따뜻한 집에 힘 받아서 얼른 저녁 차려 배부르게 먹었다.
카페인 문제로 되도록 커피를 마시지 않는데,
밥 먹고 과일 먹고 머뭇거리다 커피도 반잔 마셔버렸네.
덕분에 정신이 말똥말똥, 새벽에나 잠이 들었지.
"심판의 날"이라는 말이 자꾸 떠오른다.
정치권, 사법부, 검찰 같은 기관과 고위공직자들, 언론사 등등.
그들이 오랫동안 장막 뒤에서 맺어온 끈끈한 이해관계의 그물과,
비리와 부패로 점철된 더러운 행각이 세상에 드러나고.
이들을 심판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조성되고 있다.
바뀌어야 한다,
썩어빠진 이들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나라를 바꾸자!
빠져나가는 미꾸라지들은 있겠지만.
썩어빠진 자기들의 이득을 지키겠다고 되지도 않게 발악하는 바람에 뽑아버리기가 더 쉬워진 측면이 있다.
어쩜 하는 거마다 들키고 망하니.
깔끔하게 마무리되기를.
긴 세월 잘도 해 먹었지.
더러운 족속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