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어느 여름이 쉬웠겠는가, 만.
내게 이번 여름은 신체적으로 정말 힘들다.
평생 튼튼하거나 건강했던 적이 없었지만 이번 여름에는
체력 저하를 실시간으로 느끼는 중이다.
전에 없이 설거지를 미룬다거나.
펄펄 김이 오르는 보리차 끓이기가 망설여진다거나, 하는 일들이 생겼다.
병원 예약을 되도록 늦은 시간에 잡아서
집을 나서면 따가운 햇살이 서쪽으로 기울어 가거든.
양산으로 햇빛을 최대한 가리면서 양산 아래 보이는 사람들과 거리를 바라본다.
인간의 삶은 왜 힘들까?, 하는 쓰잘데기 없는 상념을 하면서.
누가 들어도 말도 안 되는 사이비종교에 폭 빠진다거나,
해괴하고 해로운 정치 편향이나 신념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볼 때.
나로서는 저 사람은 심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판단해야 하고, 고민해야 하고, 선택해야 하며.
그 결과를, 자신이 선택한 범위만이 아니라,
태생적으로 주어진 한계,
사회가 부여한 책임과 부담까지 몽땅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삶은 누구에게나 무겁다.
지금도 그 무게가 까마득한데,
앞날에도 이 굴레에서 벗어날 구멍이 도저히 보이지 않을 때.
더 나빠지고 더 힘들어질 수 있다는 비관으로 겁에 질릴 때.
살금살금 다가와 당신을 천국으로 인도합니다,
혼자 고민하지 마세요,
나만 믿고 따르면 반드시 행복이 옵니다!
강하면서도, 크게 크게, 반복해서 떠든다면.
오? 드디어 이 구차함을 벗어날 기회가 온 건가!- 솔깃할 수도 있겠지.
사람은 허약하고 어리석다.
세상에 일어나는 이상한 일의 대부분은 이 때문으로 보인다.
4, 50대가 많이 들어오는 커뮤니티에는 가끔 현실을 힘들어하면서 괴로워하는 글이 올라온다.
가족 문제, 건강 문제도 있지만 생계에 대한 걱정이 꽤 있다.
대기업이라 해도 40대에 접어들면 퇴직을 걱정하고.
간신히 대출이 잔뜩 낀 집 하나 장만했거나,
전셋집, 월세집에 살거나 할 것 없이.
안정된 직장을 잃고 망망대해 같은 이 세상을 맨몸으로 자식들 키워내야 하는 위기에 처한 가장들은,
매일매일 때려치우고 싶은 비굴함을 겪으면서도 그만둘 수 없는 부모 된 자는,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아가야 하지, 하는 위기감에 불안을 떨치지 못한다.
커뮤니티를 눈팅만 할 뿐인 나는 그분들께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낸 생존자들이 아닌가.
언제나 인생은 쉽지 않았고,
이 순간에 이르도록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실패를 거듭했는가.
그 많은 걱정과 좌절을 헤치면서 지금의 내가 되었다.
젊었을 때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오직 장래에 대한 희망으로 씩씩할 수 있었다.
인생의 중반을 살아온 여러분은 희망이 줄어들고 삶과 인간에 대한 실망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겠지만.
우리는 인생의 경험이 있다.
시련의 경험이 단지 상처로만 남은 경우도 있겠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인생에서 무엇을 구하고 무엇을 놓을 것인지, 옥석을 가리게 되었으며.
두려워하던 상황이라도 막상 부딪혀 보면 견딜만해서 의외로 괜찮은 걸!, 할 수도 있다.
담담하게,
내가 놓이게 된 어떤 상황이라도 이것이 현실임을 받아들이고.
그 현실에서 자신이 바라는 방향을 향해 차근차근 살아가면 된다.
아무리 험한 현실이라도 자신을 잘 지켜내기만 한다면.
비참하지 않다.
자신이 망가지지만 않으면 됩니다.
부귀영화를 가져도 사람이 망가져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매일매일 보다 나은 존재로 성장하는 것.
이것만 놓치지 않으면 떳떳하게 살아낼 수 있다.
그 떳떳함이 생계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