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결정적인 시기

끄적끄적

by 기차는 달려가고

계속 몸이 안 좋다.

추워서, 더워서, 환절기라서,

하여간 좋은 날이 없어요.


집에만 있다가,

어제 오후에는 에잇, 하고 밖으로 나가서 좀 걸었다.

머플러와 옷, 장갑으로 몸을 둘둘 싸 감고 나갔는데,

바싹 마른 이파리들이 떨어져서 발에 밟히고요.

해가 지니 금세 추워지대요.

언제 시간이 이렇게 갔을까?



전기 라디에이터를 발 앞에 두고 가만히 앉아있는다.

책도 안 읽히고,

휴대폰을 들었다, 던졌다.

사탕과 초콜릿을 연신 입에 넣다가,

홀짝홀짝 차를 마신다.

그런 중에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잡념들이 뭉게구름처럼 피었다 사라지곤 하지.

문득문득 예전에 알고 지냈던 사람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등장인물은 또 그 사람의 이야기를 끌어온다.


대체로 운명론자인 나는,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

대부분의 한계와 약간의 가능성이라는 환경에 놓인다, 고 말해왔다.

그 약간의 가능성으로 자신이 갇힌 한계를 극복하려는 극소수의 대단한 사람들이 있고.

대다수는 한계 안에서 버둥거리면서

왜! 나는!, 이라는 억울함과 원망에 휩싸이곤 하지.

65년을 살아오면서 나 자신 포함,

주변사람들의 인생을 돌아보니 인생에는 결정적인 시기가 있더라.

대개들 20, 30대에 취업과 결혼, 자녀 출산이라는 인생의 빅이벤트가 일어나고.

그 뒤에는 이미 결정된 사안을 뒤치다꺼리만 하면서 늙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시간이 갈수록 이미 결정한 무게를 등에 짊어진 채,

선택의 폭이 한정되어 가는 거다.

(많지는 않은데 그때 결정을 잘해서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 가는 좋은 사례도 있습니다.)


이제와 나의 20, 30 대를 돌아보면 뭘 알았나, 싶은데 잘난 척, 아는 척은 엄청했었다.

(지금도 그럼^^)

그저 반짝이는 것들에 홀려서,

주변에서 이렇다 저렇다, 하는 말에 휘둘리거나.

세상은 막연히 만만하거나 또는 왠지 두렵거나 해서.

자신을 정확하게 파악하지도 못하고,

세상이나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내편한대로 세상은, 내 삶은 이래야 한다, 고 우기기만 했었다.

다행히 그때 아무 결정을 못해서 또는 안 하고 뭉갠 덕분에 지금 홀가분하기는 합니다.

네, 여전히 아무 결정도 못한 채로요.

세상 주변에서 인간과 세상을 그저 구경만 할 뿐이지요.


추세를 보아하니 나처럼 결정적인 결정을 하지 않는 청춘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인생의 폭을 한정 짓는 결정을 미루거나,

또는 결행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크다는 점을 어렴풋이 느껴서 일수도 있겠지.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집에서 빈둥빈둥 놀면서,

지금은 내 인생의 모라토리엄이야,라고 합리화했었는데.


결정하지 않는 것도 결정이다.

어떤 방식이든 자신의 삶을 온전히 책임지겠다,는 자세라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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