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들

by 기차는 달려가고

도쿄,

내가 종종 갔던 오래된 동네에는 신사가 있었는데,

그 뒤에던가 옆에던가에 작은 공동묘지가 있었다.

주택가 한가운데,

집들과 바로 담장이 붙어 있는 곳이었다.

묘지는 사람이 겨우 지날 만한 통로를 사이에 두고 돌에 이름을 새긴 조형물 형태의 무덤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가끔 동네 산책길에 들여다보면 조용했지만

성묘객은 있는지 손질이 된 반짝반짝 묘석들과 꽃들로 묘지는 깔끔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젊었던 나는 이 동네 사람들은 바로 옆에 무덤을 두고 무섭지도 않나, 의아해하면서도.

검거나 잿빛의 묘석마다 새겨진 이름들을 읽고 다녔다.

묘석 하나에는 가족 여럿이 함께 안장돼 있었다.



유럽에서도 동네에 붙어있는 공동묘지를 여러 번 보았다.

소설에서 읽었듯이 오래전 교회 뒷마당에 동네 사람들의 공동묘지를 조성한 것 같았다.

처음부터 동네에 이웃해 조성된 것인지,

아니면 동네가 확장되면서 거리가 있었던 공동묘지와 만나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시간으로 보면 수 백 년에 이르는 장소였으니.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네에 바싹 붙어 묘지가 생긴 것도 신기했지만,

인구가 늘어나고 묘지와 동네가 붙어있는데도 무덤을 옮기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도 낯설었다.

건설과 개발로 풍경이 늘 바뀌었는 지난 세기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는 죽은 자들은 이승에 머물지 않고

사자들의 세상인 저승으로 확실하게 떠나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유럽의 공동묘지 역시 상당히 조밀하고,

각각 다른 형태의 석재의 조각품으로 꾸며져 있었다.

부부 합장 외에는 단독으로 산소를 조성하고,

관 위에는 흙을 덮어 봉분을 만들며,

주위에 공간을 충분히 두는 우리 풍습과 크게 차이가 있었다.

또 석재의 조형물은 봉분 밖에 세우는 우리나라의 묘지 형태와도 많이 달랐다.


비엔나에서 베토벤이 살았던 집을 구경한 적이 있다.

그리고 베토벤과 유명한 예술가들의 무덤이 있는 공동묘지를 찾았었다.

시내에서 떨어진 곳에 넓게 자리 잡아 있었는데,

관이 놓였을 자리 위에는 화려한 석재의 조각물에 이름과 살았던 기간을 표시했다.

비교적 가까운 과거에 조성된 대규모 묘지여서 그런지 넓은 장소에 공원처럼 꾸며져 있었다.

그래도 개별적인 무덤의 형태는 이전의 공동묘지에서 그리 달라지지는 않은 것으로 보였다.



외국에 여행 가면 묘지를 찾을 기회를 마다하지 않는다.

사실 피할 수도 없는 게 대개 성당, 교회는 곧 유명한 사람, 신분이 높은 사람들의 묘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교회 지하에 누구, 누구의 관이 놓여 있다거나.

교회 안 바로 여기에 누가 묻혀 있다는 말이 이해되지 않아, 내가 잘못 들었나? 했었다.


제대로 이해한 건지 모르겠는데,

내가 본 사례로 추측하자면 옛날에 유럽에서는 대단한 집안, 유명 인사는 죽어서 교회에 묻히고,

(또는 무덤 삼아 교회를 짓고)

일반 사람들은 교회 뒷마당, 공동묘지에 자리 잡는 것 같았다.

(가보지는 못했지만 이슬람 문화권도 유명 인사의 시신을 넣은 관을 건물을 지어 안치하는 것 같다.)



언젠가 외신에서 외국도 지방 인구가 줄고 폐가가 늘면서 동네 공동묘지 또한 황폐해지고 있다는 소식을 봤다.

죽은 자의 흔적은 살아있는 자들이 돌보게 되어 있으니,

묘지는 자손들의 행방에 영향을 받는다.

피라미드처럼 자손들의 생계를 돕는 무덤도 있고,

인구가 빠져나간 지역에서 마을과 함께 스러져가는 묘지도 있다.

살아가기에 급급한 자손들은 망자의 흔적까지 돌볼 여유가 없어

살다 가면 그뿐, 무덤은 부질없다- 할 수 있지만.



그래도 혼신을 다해 세상에 아름다운 의미를 남기고 간 사람들에게,

당신이 일깨워준 진실이 내 인생의 지침이 되었다고.

찾아가 고마움을 말할 곳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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