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동서고금,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외모에 대한 관심이 지극하다.
예쁜 외모로 태어나는 순간, 프리미엄을 쥐고 살아가지.
분명히 예쁜 아기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더 많은 웃음과 친절을 받는다.
그렇게 주변의 호의와 환영을 한 몸에 받는 잘 생긴 형제자매가 있는 대다수 평범한 아이는,
뒷전에서 물끄러미 그 장면을 바라보겠지.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늘, 번번이.
자신에겐 오지 않는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을 말이다.
내가 자랐던 예전보다 이미지가 득세하는 21세기에 외모가 갖는 힘이 더 커진 느낌이고.
잘 생긴 외모를 착한 얼굴이네, 몸매네, 하면서 그 내면까지 단정 짓는다.
외모가 좋으면 실질적인 이득을 얻는 기회도 많아졌다.
그만큼 미남 미녀가 받는 유혹과 시기 질투도 커져서,
그들이 감당해야 할 부정적인 압력도 높아지고 있습니다만.
사람은 내면보다 외모가 먼저 보이기 때문에 잘 생긴 외모에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을지 모른다.
조상님들도 신, 언, 서, 판-이라 하며 사람을 판단하는 데 있어 외모를 한 조건으로 보지 않았나.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사람마다 좋고 끌리는 생김새에 차이가 있어서,
외모라는 게 일렬로 등수를 매길 수 있는 건 아닙니다만.
언뜻 봐서 근사해 보이면 대체로 호감을 받는 건 사실이다.
사춘기 아이들은 외모에 상당히 민감해서,
때로는 잘나지 않은 외모를 물려준 부모를 원망하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본질적인 것에 집중해 외모를 극복하기도 하고.
나이 드니 외모의 평준화가 일어나서 그럭저럭 무심해질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라서,
나이 든 여자들 모임에서 눈에 띄게 세련된 외모를 가진 한 분을,
내 눈에는 안 보여,라는 듯 일제히 투명인간 취급하는 경우도 있었고.
안 그래도 자존감이 바닥을 친 서글픈 심정에 예쁜 여자가 눈앞에 알짱거리면.
확, 손톱을 세우고 할퀴듯, 되지도 않게 사람을 긁는 경우도 보았다.
언젠가 주부들 커뮤니티에 키 크고 날씬한 어떤 여자에 대한 글이 올라왔는데.
키 크면 나중에 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들 고생이나 시키지, 뭐가 좋냐, 는 댓글이 달리더라.
크게 맺힌 게 있으셨던 모양.
눈에 띄는 외모를 갖지 못한 대다수는,
대개조 작전에 들어가 통증을 감수하고 시간과 비용을 들여 자신의 외모를 바꾸는 방법도 있겠고.
껍데기에 불과한 외모에 휘둘리지 않기로 자세를 다잡는 방법도 있다.
인품을 드높이고 온화한 마음을 키워서 분위기로 외모를 극복하는 방법도 있지.
내세울 것 없는 이 외모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는 엄연한 사실을 통감했을 때-
외모에 대한 입장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나이 들어서 삐죽거리며 이쁜 여자 시기 질투하는 모습이 더 못나 보이더라.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내가 못 가진 것에 연연해서 타인을 시기, 질투하여.
험담과 모략으로 자기 마음을 지옥으로 만들면,
자신이 제일 힘들고 주변 사람도 피곤하다.
과하지 않을 정도로 시간과 관심을 쏟아 깔끔하게 외모를 가꾸고.
평온한 일상을 충실하게 살아가다 보면.
자신의 삶을 사랑하게 되고.
그러면 단지 사람의 한 부분으로,
외모를 덤덤하게 대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