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공원, 넓은 공원

by 기차는 달려가고

피로감을 느낀다.

때론 숨이 막힌다.

이기적이고 타산적인 관계 속에서

내 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과업은 고통스럽다.

답답한 가슴은 숨을 크게 내쉬어도 풀리지 않는다.


무거운 마음,

정처 없이 걷는다.

대도시, 높은 건물 사이, 그늘진 도로,

우글거리는 사람들.

시끄럽고, 복잡하다.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졌다.

도시는 불빛으로 번쩍거린다.

마음은 갈 곳을 못 찾아 허둥거린다.



8,90년대에 외국 여행을 다닐 때 부러웠던 몇 가지가 있었다.

그중 도서관은 우리나라도 상당히 좋아졌다.

숫자도 늘어나고 운영도 상당히 원활하다.

출판업이 불황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리지만 우리나라에서 도서관은 나날이 발전해왔다.

부러울 게 없어요.

앞으로는 더 잘할 테니까.


모자라고 부족했던 소비재, 생활용품은 시장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그 시절에 비하면 가격도 대단히 저렴하다.

예전보다 싸고 좋은 물건들이, 훨씬 다양하게

시장에 쌓여 있는 것이다.


거리의 간판이나 진열대, 광고도 예전에 비해 엄청나게 세련되었다.

사람들의 멋진 옷차림이나 자연스러운 화장은 또 어떻고.

외국 잡지를 보고 그대로 따라 만들어 입던 옷과,

흉내 내어 화장을 했던 우리 때와 달리.

한 세대만에 우리나라는 전반적으로 미적 감각이 놀랄 만큼 높아졌다.

오, 오, 오, 이제는 'K-뷰티'라니!

이런 날이 오는구나, 감격스럽다.



아직 기대에 다소 못 미치는 부분으로 공원이 있다.

(물론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우리가 가진 조건에서 지금 최선을 다하는 것은 맞다.)

이른바 선진국 대도시들은 도심 한가운데 커다란 공원들이 있더라.

누구든지 쉽게 드나들 수 있는 아름다운 공원은 참 부러웠었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나라 도시 곳곳에도 많은 공원이 조성되었고 잘 관리되고는 있다.


우리나라는 산지가 많아 큰 도시는 산과 강을 끼고 있지.

부산은 바다가 있고,

서울은 궁궐과 남산, 북한산, 인왕산 같은 산들,

유유히 흐르는 한강과 남북의 지류들이 공원 역할을 한다.


하지만 입장료를 내고 조심스럽게 다녀야 하는 궁궐은 지켜야 할 유적이지 드나들기 편한 공원은 아니다.

산과 강, 바다는 번화가에서 지나다 들리기에는 접근성이 좀 떨어진다.



내가 좋아했던 대도시의 커다란 공원들은 번화가의 고층건물들, 거리의 소음과 화려한 소비의 진열장들을 따라 걷다가.

어느새 숲 속인가, 꽃밭인가, 들어오게 되는 그런 곳들이었다.

경계 없이 자연스럽게 걸음을 따라 닿은 그곳에,

푸른 나무들 사이로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나뭇가지에는 새들이 날아다니고.

향긋한 풀이 자라고, 영롱하게 빗물이 맺히고, 촉촉한 이끼가 끼어있는 곳.

졸졸졸 물이 흐르고 연못에는 개구리가 폴짝 뛰었던,

자연의 변화를 담뿍 느낄 수 있는 사랑스러운 장소였다.

뉴욕, 베를린, 런던...

다른 대도시들도 모두 커다란 자연이 대도시 빌딩 더미와 공존하고 있었다.


아침,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잠깐이라도 수풀 사이를 걸으면서 일터의 고난을 대비하고.

퇴근하고는 종일 쌓인 피로감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

그냥 걷는 것만으로 날카로워진 마음이 차츰 풀어지고,

세상에 단단한 방어벽을 세우는 대신 자신의 언행을 찬찬히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찾는 곳.

그래서 잠들기 전,

앙금도, 자책도 내려놓고 잘 살아낸 하루에 감사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자연을 닮은 공원을 꿈꾼다.



마음을 달랠 자연이 사라진 도시에서 사람들은 서로 생살을 부대끼면서 상처를 주고받았다.

독한 말로 상대를 공격하고,

서로 미움을 쌓으면서.

그래서 부글부글 끓는 마음에 술을 들이부으며, 해결되지 않는 증오심을 묻어두기만 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되어가는데.


공원이 답이 될 수는 없겠지만 도움은 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이 외따로 있는 특별난 존재가 아니라 자연 속 한 부분임을 인식하자.

우리의 도시는 자연에서 너무 동떨어져왔다.

대도시 안에 자연을 복원하자.



외국 대도시 번화가 한가운데 펼쳐진 넓고 풍성한 공원들은 대부분,

현대 이전에는 왕가의 사냥터라든가 귀족의 저택 부지였다고 한다.

그 넓은 땅을 극소수의 사람들이 차지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옹색한 면적에서 복닥이며 살아갔던 시대를 떠올려 보니,

지금 태어나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이 시대도 문제는 많지만 그나마 낫다는 생각이,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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