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성당에서

by 기차는 달려가고

오랜만에 명동성당에 다녀왔다.

화창한 봄날,

성당 마당 커다란 나무들의 검은 줄기에는 연둣빛 이파리들이 오물오물 올라오고 있었다.

차분한 적갈색 벽돌 건물,

하얀 마리아,

사이사이 바람에 흔들리는 아련한 연푸른 빛.


미사가 중단된 성당은 고요하고,

몇몇 사람들은 텅 빈 성당 안으로 조용히 들어와 침묵의 기도를 올린다.

하늘은 파랗고 빛은 환했다.

성당은 그렇게 화사한 봄빛을 받으며 언덕 위에 담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전염병에 휘둘리는 세속의 태풍 속에서.



고등학생 때부터 명동성당에 드나들었다.

소녀의 감성으로 급하게 세례는 받았지만 신앙심이 있어서라고는 말할 수 없다.

가끔 명동으로 나가면 좀 더 걸어 성당까지 가 짧은 기도를 드렸다.

그저 성당이 가진 담백한 분위기에 끌렸던 것 같다.

수선스럽지 않으면서 진실해 보이는.


박정희 시대에 명동성당은 독재에 항거하여 고통받는 자들에게 최후의 보루가 되어 주었다.

여고생이던 나는 그들을 응원하는 마음이어서,

내가 명동성당에 인연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자부심이 있었다.

명동성당이 세속에서의 정의로운 역할에 소홀하게 되었을 때,

나는 차츰차츰 성당에서 멀어졌다.



아산에 있는 공세리 성당을 좋아한다.

작고 정갈한 성당은 정말 아름다운 언덕에 놓여 있다.

수백 년 된 풍성한 나무들에 에워싸인 반듯하고 작은 성당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계절에 가도 마음을 뒤흔든다.

한 자리에서 묵묵히 수백 년의 세월을 지켜본 나무가 주는 감동이 있다.


거기에 더해 100년 전쯤,

자신이 믿는 진실을 위해 고통을 자청하고 죽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의 기억은,

울컥 삶의 가치를 생각하게 한다.

성당 언덕을 에워싼 14처는 마치 풍성한 숲 같은 느낌을 준다.

아름다운 길이다.

사실은 트럭들이 쉴 새 없이 달리는 산업 도로가 바로 아래에 있어 상당히 시끄러운데,

나는 시각이 청각을 압도하는 경우가 있다는 걸 여기서 알았다.

풍경은 그윽하다.

고통과 치욕을 견디는 이천 년 전,

십자가를 끌고 가는 남자의 외로움이 푹, 마음으로 들어왔다.



어머니가 좋아하셔서 한동안 정선에 자주 다녔다.

갓 지져내는 배추전, 메밀전병이 맛있다.

조양강에서 잡은 민물고기로 끓인 강변의 매운탕은 고봉밥을 부른다.


읍내,

시장 옆에는 오래된 성당이 있다.

정답고 소박한 뜰을 가진 시골 성당이다.

모녀는 머루(?) 넝쿨이 올라간 그늘 아래에 자리를 잡고,

새의 지저귐을 들으면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마음 깊은 정성과 손길이 충만한 곳이었다.



교회는 그런 곳이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면서

간절하게 더 나은 자신이기를 기도하는 곳.

그럴 수 있기를 도와주십사, 바라는 곳.


외로움과 막막함으로 주저앉았을 때,

그저 마음을 어루만질 뿐.

위로는 시끄러울 것도, 요란스럽게 쾅쾅 발을 구르거나 지상낙원을 약속할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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