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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Apr 29. 2020

사 먹는 밥, 해 먹는 밥

음식에 관한 단상 20

아무리 맛집이네, 먹방이네 하면서 음식에 관심이 아졌다지만.

빤한 수입에, 매일 사 먹어야 하는 밥.

메뉴판 500원 차이에 선택을 망설인다.

한 끼 식사에 지불할 수 있는 액수는 뻔하고,

그 가격으로 내놓을 수 있는 음식도 뻔하다.

식당에서 장소 임대료와 인건비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식재료를 싸게 살 수 있는 경로, 더 싼 재료로 대체할 수 있는 조리법으로 음식의 형상과 맛을 그럭저럭 맞춘다.



집에서 해 먹는 밥도 한정된 생활비 안에서 장을 볼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집밥은 건강과 입맛이 우선이다.

가급적 좋은 재료를 찾고, 맛을 낼 만큼은 재료를 다.


파는 음식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니 수지타산을 맞출 수밖에 없다.

가격에 재료를 맞추고, 분량아낀다.

고기가 풍성하게 들어가야 제맛인 불고기와 제육볶음,

주재료가 넉넉해야 맛이 나는 매운탕, 아귀찜에는 채소만 잔뜩이다.

주인공은 어디 갔나요?



만두 속은 무말랭이와 당면이 거의 다이,

순대는 당면 부스러기로 속을 채운 분식집 순대가 대세가 되었.

소고기 볶음이 충분히 들어간 옛날식 김밥은 찾기 어렵다.

원래부터 김밥에는 햄과 소시지가 주인공인 양,

그것도 아끼더니 이제는 어묵이 들어가더라.

비싼 시금치는 사라지고,

계란 찔끔.

당근채는 기름에 볶지 않은 날 것으로 그 양이 지나치,

단무지는 너무 .

예전에는 부엌에서 처리되어 상에서는 볼 수 없었던 김밥 꼬투리가 이제는 당당하게  자리 차지한다.

영 적응이 안 .



잡채에 소고기는 적게 넣거나 돼지고기로 대체되었다.

채소는 조금, 표고버섯은 자취가 없.

거의 당면으로만 볶은 잡채도 있던 .

동태전의 동태포는 너무 , 대구전시중에서 찾기 힘들다.

생선조림에는 큼직한 무 조각 양이 과하다.

소고기와 돼지고기 다짐을 섞어 쓰던 동그랑땡, 버섯전, 고추전, 깻잎전에는 돼지고기와 두부들어가.

참기름 대신 참기름 맛 기름,

빨간 매운맛은 우리가 아는 그 고춧가루가 아닐 수도 있다.



조리 방법도 손쉬운 방향으로 움직인다.

만둣국, 탕평채, 떡국, 비빔밥... 할 것 없이 모두 김  가루를 듬뿍 올린다.

그래서 다들 비슷한, 김의 .

솜씨와 시간, 손길이 필요한 요리보다는 날고기를 직화로 굽고.

생선구이는 냄새 때문에 식당에서 사 먹는 반찬이 되었다.

채소는 조물조물 무침 대신 샐러드처럼 양념을 뿌린다.

그렇게 손이 덜 가는 조리방식이 주류가 되는 느낌이다.



내 어릴 때 우리 한식은 지금 시중에서 흔히 보는 그런 음식만은 아니었다.

좋은 재료를 넉넉히 넣은, 손길이 많이 간 정성스러운 음식이었다.

우리가 즐겨먹는 한식은 점점 가격만으로 경쟁을 하게 되었다.

가격을 낮추느라 재료를 충분히 쓰지 못하니 강한 양념과 화학조미료로 맛을 채운다.

전반적으로 우리 음식의 질이 내려가는 것 같다.

예전에 먹었던 그 맛을 식당에서는 찾기 어렵다.


물론 특출한 재능을 가진 요리사가 가격의 압박으로 고심하다가 새로운 맛의 요리를 발견할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투덜거리는 요즘 시중 음식이 사람들 입맛에 더 잘 맞을 수도 있다.



가격은 서민급으로 지불하면서 입맛만 귀족급인, 다 내 잘못이다.

그냥 나는 집에서 밥먹어야겠다.

솜씨가 떨어지는 대신 재료나 마음껏 쓰면서,

혼자 내 입맛에 맞게 밥 해 먹어야지.



부엌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

끙, 자승자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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