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에 작품 활동을 했던 나쓰메 소세키라는 일본 소설가가 있다.
그는 삼십 대 중반이던 1900년부터 2년 가까이 런던에서 국비장학생으로 영국 문학을 공부했었는데.
그때 일본 잡지에 보냈던 글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작가는 19세기 영국 사상가인 토머스 칼라일이 살았던 런던 첼시 지역 체인 로우의 집을 방문했던 일화와 자신이 살았던 변두리 하숙집에 관한 얘기를 썼다.
내가 처음으로 간 외국이 런던이었고,
어학연수로 4주일 동안 하숙했었다.
나쓰메 소세키의 런던에 관한 글을 읽다 보니 런던 그 하숙집이 생각났다.
내가 머물렀던 집은 어학연수 기관에서 연결해준 하숙집으로,
침대, 옷장, 책상이 있는 독방과 아침, 저녁 식사를 제공했다.
(빨래는 어떻게 했던 거지? 기억이 캄캄함)
런던 도심에서 북쪽으로 지하철 몇 정거장 거리에 있었던 타운하우스.
굉장히 오래된 주택이 많은 런던에서 그 집은 비교적 새 건물이었는데
각 세대는 지상 세 층이던가? 네 개층? 이던가,
두 집이 한 면의 벽을 공유했다.
지하철역에서 올라와 좀 걸으면 동네가 시작되었는데,
비슷하게 생긴 붉은 벽돌의 타운하우스 단지는 꽤 컸다.
길에서 한 단 올라서면 담장 없이 작은 잔디밭이 있고, 그 사이를 몇 걸음 지나 현관이 있다.
(그렇게 기억된다.)
현관을 들어서면 로비, 이어서 식당,
그 안쪽에 부엌이 있었고.
식당에는 뒷마당으로 나가는 큰 유리문이 있었다.
아침, 저녁 식사는 식당에서
나와, 함께 온 다른 어학연수생 하나.
그렇게 둘이서 그 가족들과 따로 먹었다.
아침에는 빵과 우유 햄 같은 서양식 아침 식사.
저녁은 마켓에서 파는 냉동 일품요리를 오븐에서 데워 주는 정도.
그때 우리 일행의 하숙집 중에는 식사의 질이나 양에서 처참한 사례들이 좀 있어서 그 정도면 뭐 Thank you.
1월이어서 날은 거의 흐렸다.
아침 식사를 하러 내려가면 뒷마당으로 난 식당 유리문으로 빗방울이 맺혀있거나 잿빛 하늘이거나.
좁고 나무 울타리로 막혔지만,
나는 유리창으로 보이는 잔디가 파란 뒷마당이 좋았다.
마당을 바라보며 빵을 뜯으면서 화창한 여름날 여기서 저녁에 바비큐 하면 좋겠구나, 공상을 했었지.
런던 시내에는 백 년은 훨씬 전에 넘었을 빅토리아 풍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여전히 현역으로 활약 중이었다.
하얀 테두리의 돌출된 창문을 가진 건물들은,
출입구는 길에서 층계를 몇 개 올라서 있고.
그 아래, 길에서 약간 공간을 띄어 커다란 창문이 달린 반지하 층이 있다.
늘 전등이 켜져서 밖에서 실내가 환히 들여다 보이는 반지하층은,
사무실로도, 음식점으로도, 가게로도 잘 활용되고 있었다.
어느 소설에선가는 그 반지하가 부엌이어서, 이야기 전개에 중요한 배경이 되었었는데.
그 공간에 당시에는 연료로 썼던 석탄과 여러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쌓아 두었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수레에서 반지하층으로 무거운 물건을 직접 옮길 수 있도록 외부 통로가 필요했겠지.
나쓰메 소세키가 방문했던 토머스 칼라일 기념관에서는 그 반지하 층에
친절한 기념관 안내 직원이 거주했다고 작가는 쓰고 있다.
길에 나있는 현관을 두드려서 집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라든가,
좁은 전면에, 위로 층층이 쌓은 건물 형태라든가.
담장으로 가로막힌 뒷마당 풍경이
칼라일이 살았던 한 세기를 지나 내가 런던에 있었던 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런던 거리를 지나다 보면 밖에서 들여다 보이는 그 계단 밑 반지하 공간에,
외부의 시선에는 무심하게 사람들이 왔다 갔다 자신의 일을 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런던이 좀 그리워지네.
한때 나의 최애 도시였는데.
템즈 강 저편, 거장 칼라일이 살았던 동네를 바라보며
강의 남쪽 노동자 거리, 저렴한 하숙집에서.
문화 충격과 열등감과 궁핍한 생활에 우울해하던 나쓰메 소세키.
여러 어려움 중에도
"나는 자신을 제대로 지켜가고 있다"는 작가의 자부심에서.
이십 대 마지막 해에 장학금을 받아 독일로 유학을 떠났던,
젊은 시절 나의 아버지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