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선의와 도움을 많이 받았다.
어머니와 둘이 여행 다닐 때는 '좋겠다', '부럽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대개들 딸과 함께 또는 엄마랑 같이 여행하고 싶다는 소망들이 있는가 보다.
다만 늙어가는 어머니가 시간이 있을 때는 딸이 사느라 바쁘고,
딸이 한숨 돌렸을 때 늙은 어머니는 이미 거동이 어렵다.
사는 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가 혼자 여행할 때 여자들, 특히 또래 젊은 여자들은 선의와 호기심을 많이 보여주었다.
지금은 여자 혼자 여행하는 일이 흔하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아서,
어른들은 걱정하시면서도 뭐라도 도와주려 하셨고,
또래들은 여행에 관해 묻고, 동경했다.
이건 어느 나라나 비슷함.
대학 졸업할 즈음부터 혼자 여행을 했다.
1980년 대라 그때 지방을 혼자 다니면 시선과 걱정을 한 몸에 받았었다.
정작 우리 부모님은 별말씀이 없으셨는데.
1983,4년쯤인가 부여에 갔다.
우리 부모님 신혼여행 사진에도 등장하는 부여에 나는 막연한 호의를 품고 있었다.
전에 간 적은 있었는데,
박물관에 있는 아득한 시간의 유물들과 말없는 백마강의 풍경만 기억에 남았다.
그 날 부여에 버스를 내려 밥을 먹고 숙소를 찾으면서 내가 받은 인상은 상당히 뒤처졌다는 것.
산업도 없고 인구는 빠져나가,
내리막에 가속도가 붙은 흔한 1980년 대 지방 작은 도시였다.
마음에 드는 숙소를 찾을 수 없어 적당한 여관에 짐을 내려놓고 고란사에 갔다.
그때 고란사는 좁고 비탈진 길을 따라 들어갔던,
허름하고 작은 절로 기억한다.
사람 없는 본당에 꾸벅 인사를 올리고 절을 둘러보려니 비구니 스님이 말을 걸어오셨다.
혼자인 내게 관심을 보이시던 중년의 스님은 절에 관해 찬찬히 설명해주시면서.
혼자 여행 왔고 여관에서 잘 생각이라는 내게,
고란사는 비구니 절이고, 지금은 스님이랑 공양 보살님만 절에 있다시며.
에구, 여관에서 자지 말고 여기서 우리랑 같이 있는 게 어때요? 제안하셨다.
어머나, 나는 환호성을 올리면서
옙, 감사합니다!
당장 여관에 달려가 가방을 찾아 절로 돌아왔다.
상세한 기억은 없다.
절에는 스님과 공양주가 계셨고,
늦게 할머니 신자 한 분이 들어오셨다.
아마 다 같이 둘러앉아 저녁 밥상을 받았고,
방문객들이 모두 빠져나간 고요한 저녁을 보냈겠지.
내가 방을 혼자 썼던 것 같지는 않다.
다음 날 아침, 언뜻 정신이 들었을 때,
내 머리맡에는 스님과 공양주와 할머니 신자분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그냥 동네 이야기, 주변 사람들 이야기.
흔한 보통의 이야기인데 속되지 않고 정다운 분위기가 있었다.
어릴 적 내가 낮잠에서 깨어날 때 할머니랑 엄마랑 식모 언니가 둘러앉아서 부지런히 손을 놀리면서 두런두런 나누었던 반찬 이야기, 이웃집 이야기 같은.
뭐 흔한 일상의 그런 이야기들.
악의 없이, 순한 마음으로.
삶의 애환을 아는 온유한 이들이 세상에 보내는 공감과 이해의 마음이었다.
종교나 신앙의 본심이 그런 게 아닐까?
이불을 덮고 누워서 반쯤 눈을 뜬 나는,
머리맡에서 정답게 보통의 이야기를 나누시는 그 따듯한 느낌이 너무 좋아서 계속 그렇게 누워 있었다.
어여 일어나 밥 먹어야지, 재촉받을 때까지.
눈곱만 떼고 혼자 뒤늦은 아침 밥상을 받았다.
세 분은 한 팔 정도 내 밥상에 거리를 두고 각자의 자리에 앉으셔서는,
이 나물 좀 먹어보라고, 된장 국물이 구수하지 않냐고.
평생 알아왔던 조카딸이 고모 댁에 놀러 온 듯,
스스럼없이 정답게 대해주셨다.
이 이야기를 쓰면서 고란사를 검색했더니 내 기억과 다른 사진들이 나온다.
다른 절이었던가?
아닌데, 고란사가 맞는데...
세월이 흘렀고 그 자리에 계시던 세 분은 지금 세상에 안 계실 수도 있겠다.
그 날처럼.
나는 다른 이들의 선의와 호의에 둘러싸여 지금까지 안전하게 세상을 지나왔구나.
이제야 그 마음들이 얼마나 귀하고 고마운지,
그 따듯함이 나를 세상의 위험에서 보호해 주고 지켜주었다는 걸 알겠다.
고맙습니다.
다들 잘 지내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