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한 뉴욕, 가난한 뉴욕

by 기차는 달려가고

1990년 대 초,

내가 처음으로 뉴욕에 갔던 그즈음에,

뉴욕은 그리 좋은 소식만 내보내는 곳이 아니었다.

물론 문화와 유행,

금융과 사업에 있어 뉴욕은 최고였지만.

사고와 범죄에서도 뉴욕은 경악할 만한 도시였다.


내가 그때 뉴욕 맨해튼에서 보았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마천루가 늘어선 번듯한 거리에 넘쳐나는 쓰레기들이었다.

쓰레기통은 있었지만,

쓰레기통을 넘어 주변에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들은,

주로 일회용 컵과 먹고 버린 음식 포장재들.

더러운 거리는 함부로 쓰고 버리는 방만함으로 악취를 풍겼다.



고가의 화려한 물건들이 진열된 고급스러운 상점들은 곧,

깨진 유리창에 거친 스프레이 낙서로 뒤덮인 버려진 건물들로 이어졌다.

세련된 사람들이 부유함을 흘리며 커다란 개와 공원을 산책하나 싶다가는,

길모퉁이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은 구걸하는 걸인들이 있었다.


시궁창 같은 지하철.

카페테라스에서 커피를 두고 신문을 읽는 한가로운 신사.

무너지고 있는 붉은 벽돌 건물들과

바닷가에 면한 공원 같은 고급 아파트 단지의 강렬한 대비.

공공연히 소매치기와 강도가 날뛰고.

초고가 고급스러운 주택 앞에는 반듯한 유니폼을 입은 문지기가 서있다.

뒤죽박죽 맨해튼이었다.



나는 조심조심 위험한 거리를 지나

미술관과 박물관을 돌아보고.

근사한 건축물들을 지나 바다를 바라보고, 공원을 걸었다.

넓고 넓은 센트럴파크는 정말 좋았고.

소장품이 어마어마한 메트로폴리탄 뮤지엄도, MOMA도, 유명한 건축물들도.

다 멋있었다.

높은 천정을 가진 넓은 가게들은 마음을 흔드는 물건들이 어찌나 멋스럽게 진열되어 있던지,

진열장만 구경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


나는 그때 플러싱 조용한 주택가에 머물고 있었는데.

한국, 중국 사람들로 복잡한 역에서 매일 낡아빠진 7번 전철을 타고 맨해튼으로 나갔다.

전철이 달리는 동안, 타고 내리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사람들은 운동화를 신고 성큼성큼 활기차게 걸어 다니고.

백 년, 이백 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쌓여있는 거대한 도시의 모든 것들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버스에 태워서 설명과 함께 뉴욕을 보여주는 관광 코스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맨해튼 북부, 할렘 지역을 돌아보는 코스를 선택했다.

관광버스를 타고 노인 안내원의 유쾌한 해설을 들었다.


그곳에서 본 것은 그저 가난이 아니었다.

대책 없는 빈곤에 더해 폭력과 방치,

무관심과 절망이 끈적끈적하게 뒤엉킨.

혼란과 어수선, 분노와 증오가 겹겹이 쌓인 또 다른 시간의 축적이었다.


오래되고 낡은 것들이 거칠게 사용되다 버려지고.

부서지고, 무너지고, 총 맞고, 더럽혀지고.

그런 곳이 미국, 뉴욕의 맨해튼에.

휘황찬란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과 같은 지하철 노선으로 겨우 몇 정거장 거리에 있었다.



몇 년 전.

도서관에서 한 미국 건축가의 성과를 담은 책을 빌렸다.

미국 남부, 어느 대학 교수였는데,

한동안 가난한 사람들의 집을 살 만하게 고쳐주는 캠페인을 했다.

그 미국 건축가가 할 수 있었던 일은 폐자재와 버려진 물건들을 이용해

사람이 기거할 수 있는 최소한의 편의와 안전을 확보하는 정도였다.

예를 들면 낡은 드럼통을 벽에 붙여서 잠잘 수 있는 벙커침대를 만드는 식으로.

전기와 상하수도 시설이 없는 외진 곳, 움막 같은 거처에서 사는 사람들이 아직도 미국에는 있었다.

물론 특정한 인종만의 사연이었다.


강하고 부유함은 엘리트들이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들은 또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선두에서 이끌어 갈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동원할 수 있는 힘과 재능을 함께 살아가는 세상과 나누는 데는 인색하면서.

자신들의 호사스러운 왕국만 공고히 하는 데에만 써버린다면.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보듯이.

사람도, 사회도 자신들이 가진 약점,

사소해서 내버려 두었던 허물 하나로 멸망할 수도 있다.



모든 기능이 멈췄을 때 죽음이 오는 것이 아니다.

다른 부분은 모두 원활한데 단 한 개의 기능이 치명적이어서 생명체는 종말을 맞을 수 있다.

심각한 불균형의 사회가 언제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처음 갔던 미국이 내게 준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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