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끄적끄적

by 기차는 달려가고

우리나라는 정부와 방역 관계자들이 보이는 최고의 능력과 헌신.

이에 호응하는 국민들의 협조로

사태를 이만큼이라도 관리하고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두더지 같은 바이러스로 힘들고 지치는데...



외신을 보면 기분이 암담해진다.

지난 몇 달 동안 활동을 멈추었던 나라들은

여전히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려도 생계 활동을 재개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바이러스에 더해 오랫동안 쌓인 고질적인 갈등이 폭발해버린 미국 사태는 도무지 낙관적인 전망이 안 보인다...


언제나 위험과 고난은 일상에 잠복해있는 것을.

우리가 동안 그래도 평온한 일상을 살았던가 보았다.

코로나 19와 경제 위기, 누적된 문제의 폭발 속으로 온 지구가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는 지금.

닥쳐올 더 큰 불행의 예감으로 몹시 불안하다.


1차 세계 대전의 비극을 겪은 뒤 2차 세계 대전의 위험이 고조되는 국면에서,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는 스스로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작가를 짓눌러버린 불안의 깊이는 얼마나 깊었던 것일까?

이 시점에 나는 그녀의 두려움을 떠올린다.



다들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직간접 모두 거센 소용돌이에 휘말린 상황에서 누가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그저 잘 버티기를,

어려움 속에서 스스로를 상하게 하지 말고 자신을 잘 지켜내기만 바랄 뿐이다.



대학 졸업 무렵에 긴 시간을 살아가게 될 앞날이 문득 두려워졌던 적이 있었다.

나는 내가 꿈꾸는 낭만적인 인생을 살아갈 것임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는데,

(평생 뭘 모르고 살아가는 무대책임)

그러면서도 그때 앞으로의 시간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확실한 느낌은 있었다.

그래서 50년을 넘는 시간을 살아낸 부모님이 대단해 보이면서,

한편으로는 50년 넘게 무사히, 대과 없이 살아내셨으니 좋겠다, 는 부러움까지 들었었다.

그 시간을 살아오면서 부모님이 겪어내야 했던 고난과 괴로움에는 이해가 없으면서 말이다.



요즘 나는 또다시 그때 심정이 되었다.

입장이 바뀌어서,

그래도 무사히 60년은 살아냈으니 다행이다, 하는 기분도 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막막한 대양 앞에 홀로 서서 노년이라는 결코 쉽지도, 편하지도 않은 시간을 바라보고 있다.

그 노년기가 얼마나 외롭고 고단한 시기인지 나는 충분히 지켜보았고.

무력하고 소외된 입장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그 시간 앞에 빈손으로 힘없이 서있는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무거운 마음으로 명동 성당을 찾았다.

광장의 나무들은 한결 무성해졌고,

성모동산에는 크고 붉은 장미와 작은 보랏빛 패랭이꽃이 피어 있었다.

잠깐 기도를 드릴 때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볕이 뜨거운 날이었다.



여기저기 숨죽인 비명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어떤 시간을 보내게 될까.

결국 우리는 인생은 고해, 라면서

지치고 오그라든 너덜너덜한 마음으로 볼품없이 늙어가는 것 말고는 다른 삶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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