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오랫동안 잘 쓰게 되는 물건이 있다.
일상생활 중, 마음에 들면서 몸에도 편해 닳을 때까지 좋아하면서 쓰는 물건이 생긴다.
대부분 괜찮은 재료로, 제대로 만들어져서, 가격도 그만큼 치른 물건이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저렴한 물건인데 마음에 들어 사 와서는 생활에 가까이, 오랫동안, 친숙하게 잘 쓰는 물건이 생긴다.
나는 잘 만들어진, 마음에 드는 물건을, 오래 쓰는 편을 선호한다.
지금 유행하는 싸게, 빠르게, 금세, 많이, 뭐 요런 개념은 대체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값비싼 물건만 사는 건 아니다.
고급 물건은 다루기에 조심스러워서 쓴다기보다는 들고만 있기가 쉽다.
늘 쓰는 물건은 관리가 쉽고 적당한 가격에 단단해서 쉽게 망가지거나 닳지 않아야 한다.
먼저 디자인, 색감, 용도가 내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지만.
이제 지난 몇 년 동안 잘 써온 앞치마를 보내게 될 것 같다.
아니 이미 보냈어야 하는데 내가 미련이 있어 여전히 혹사시키고 있었다.
끈은 너덜너덜 닳았고 여기저기 얼룩은 빨아도 없어지지 않는다.
옷감은 얇아진 지 오래.
고맙고 미안해.
그동안 정말 수고했어.
너를 어떤 방식으로 보내야 할지 결심이 되지 않아서 아직 못 보내고 있어.
그냥 쓰레기봉투에 넣을 수는 없으니...
앞치마를 좋아한다.
늘 앞치마 세 개 정도는 부엌에 걸어 두고 번갈아 쓴다.
여행을 갈 때도 앞치마와 고무장갑은 들고 다닌다.
컵 몇 개라도 씻을 일은 생기니까.
옷에 물 튀는 게 싫다.
앞치마는 물이 튀고 기름이 묻고 양념이 떨어지는 부엌의 일상사를 최일선에서 막아준다.
막아준다기보다 자신이 다 뒤집어쓴다.
그래서 살 때는 번듯하고 선명했던 외양이 부엌살이 몇 년에 초췌하고 고단한 모습이 되어 버렸다.
베이지 색 리넨 소재로, 가볍고 질기고 쓰임과 모양이 좋았던 앞치마.
세일할 때 사서 한동안 서랍에 잠자고 있다가
선임이 은퇴하고 곧바로 부엌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몇 년 동안 늘 부엌을 지켰다.
부엌에 들어가려는 내가 제일 먼저 하는 동작은,
앞치마를 둘러쓰는 것.
앞치마를 두르고서야 부엌에 들어서서 마음껏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내 부엌일의 동반자.
단순히 부엌일을 넘어 내 고단한 생활을 함께 해주었지.
깨끗이 삶아서 서랍에 넣어 둘까?
지난 몇 년은 돌아보기 싫을 만큼 심신이 힘들었는데.
그 시간을 나와 함께 해준 고마운 앞치마였다.
마치 지난 시간의 표상 같아 간직하려니 마음에 부담이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훌렁 버리기는 안타깝다.
어쩌면 좋을까?
이제는 쉬게 해 줘야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