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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Jun 07. 2020

냉장고를 열었다.

음식에 관한 단상 25

밥때가 되었다.

먹지?

냉장고를 연다.


혼자 살아도 필요한 것들은 많다.

부엌살림만 도 평소에는 작은 도구를  쓰지만,

손님이 온다거나 명절에는 큰 냄비, 큰 팬이 필요하니 크고, 작은 두 가지를 다 갖추게 된다.



혼자 살림이라도 부엌에는 꽤 많은 식품이 쌓여 있다.

부엌 경영 역시 지속적인 관심과 두뇌의 회전이 요구된다.


채소는 관리가 어렵다.

비싸더라도 조금씩 산다.

우리 음식에 꼭 필요한 파와 마늘, 고추는 당장 쓸 것 외에는 잘게 썰거나 다져서 냉동해 둔다.


감자, 양파, 당근, 무.

자주 먹고 늘 필요하다.

당근과 무는 의외로 오래간다.

제철에는 당근도, 무도 물기가 많아 아삭아삭 맛있다.

날 것으로도 잘 먹는다.

양파나 감자는 싹이 금방 난다.

싸다고 박스로 사면 나중에는 꼭 슬프게 이별하더라. ㅠ


콩나물도 요주의 식품이다.

사자마자 끓여야 된다.

국에는 콩나물이 많이 들어가야 맛이 난다.

그래서 넘치는 콩나물은 건져서 비빔밥에 고.

그래도 남은 건 라면, 찌개에 넣어 숙제하듯 먹게 되더라.

콩나물 죽을 좋아해서 가끔 한솥씩 끓인다.


두부는 금방 상한다.

먹고 싶을 때 제일 작은 것을 사서 빨리 기름에 굽거나 찌개, 국에 넣고.

자주 먹는 볶음 요리에도 넣는다.



고기는 소분해서 냉동한다. 

요즘 많이 파는 냉동된 대패삼겹살이나 샤부샤부 용 소고기는 조금씩 꺼내 쓰기에 좋다.

얇은 데다 얼어 있어 쉽게 부서지니 다지기에 편하다.


생선, 오징어는 생물이 좋지만 먹을 때마다 사는 것도 일이라,

한 마리씩 포장된 냉동 제품을 산다.

맛보다는 편리성, 보관 용이성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는 1인 가구 살림이다.


새우는 대용량 냉동 제품을 산다.

많이 사도 다양한 음식으로 잘 먹으니 소진될 때까지 에 큰 변화는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꽃게도 냉동된 것을 사둔다.

내킬 때 한두 마리씩 쪄먹는다.

잘라서 손질된 것도 가끔은 사서 찌개에 넣는다.



냉동실의 가래떡은 떡국 용으로 썰어 나오는 게 편리하다.

팬에 기름을 살짝 뿌려 구워도 먹고,

떡국, 만둣국에 넣는다.

두께가 얇아서 양념이 빨리 배니 떡볶이 만들기도 쉽다.


각종 떡도 상비 품목.

금방 해동되니까 낱개 포장 대용량으로 구비해서 식사 대용으로, 간식으로 잘 먹는다.


혼자니까 전보다 만두를 많이 먹게 되더라.

굽는 만두, 찌는 만두, 물만두, 국 만두. 

다 필요하다.



간장, 된장, 고추장.

참기름, 들기름, 참깨, 고춧가루는 우리 음식의 기본양념.

더 나은 게 없나, 찾아 헤매는 품목이다.


그렇게 집에서 밥을 해 먹어도 꼭 냉장고 구석에는 잊힌 식재료가 있다.

또 새로 등장한 재료에 마음이 끌리니, 전에 먹고 남은 재료들은 자리만 차지한 채 썩어간다.

주기적으로, 의식적으로 식료품 구입을 중단하고 '냉장고 파먹기'를 해야 한다.



혼자 일일이 밥해먹고 치우는 일은 귀찮다.

하지만 잘 먹어서 좋은 장점 외에도 음식 만들기는,

보고, 손질하고, 만들고, 치우는 과정에 집중하면서 심란했던 마음이 가라앉기도 하고.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는 역할도 한다.



이에 더해 생활의 틀이 된다고 할까.

청소와 함께 부엌일은 흐트러지기 쉬운 일상을 깐깐하게 관리하도록 재촉하는 한 축이 다.

사람이 그리 자율적이기만 한 존재는 아니어서,

하고 싶은 것 외에 '해야만 하는' 강제성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내게는 청소와 음식이 한없이 게을러지려는 나,

자꾸 나태해지려는 나를 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고맙다.



음식에 관심이 많은 시대다.

생활이 넉넉해지면서 단순한 포만감을 넘어 미각의 만족을 구하는 측면도 있겠지만.

살아가면서 받는 스트레스와 사회적 제약이  많은 상황에서.

음식은 자기 의지를 반영할 수 있어서 더 마음을 끄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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