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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Jun 11. 2020

우리 냉장고에 들어있는 음식은.

음식에 관한 단상 26

나라마다 냉장고에 들어있는 것들은 닮은 것도, 다른 것도 있겠다.

먹고사는 문제야 지구 위를 살아갔던 거의 대부분의 생명체들이 겪었을 근본적인 문제이고.

뭘 먹을까, 하는 문제 역시 상당수의 사람들이 매일 생각하는 보편적인 숙제겠지.

지금"먹나?"

수많은 사람들이 냉장고 문을 열고 닫는 중일 게다.


누가 입맛에 딱 맞는 밥상을 대령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만.



 (드물게) 의욕이 넘치는  내일과 모레나를 위해 반찬을 만든다.

음식을 식혀서 반찬통에 넣어 층층이 쌓으면 뿌듯한 기분.

며칠은 수월하겠네.



어릴 때 우리 집에는 식구가 많아 밥때마다 밥과 반찬을 새로 만들었다.

그래서 밑반찬으로만 밥 먹는 습관이 없다.

이제는 나 혼자 밥을 해 먹으니 언제든 수월하게 먹을 수 있도록 반찬거리를 조금이라도 마련해 두려고 한다.

모두 나를 키워낸 어머니의 음식들이다.



부모님의 딸로만 60년을 살았다.

뒤늦게 홀로서기를 시작한 나에게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60년은 벌써 아득한 그리움이다.

자랄 때 아버지가 지켜주셨던 든든한 성,

어머니가 차려주셨던 맛있는 밥상은 천부의 것인 줄 알았었다.

출렁이는 불확실성 위에 두 분은 온 힘을 다해 바위처럼 든든한 일상을 꾸려낸 거였구나.

지치기도, 버거울 때도 많았을 텐데 어떻게 구비구비 산등성이를 넘고 계곡을 건너면서.

자식들에게 한결같이 든든한 반석을 마련해 줄 수 있었을까?


이제 딸은 튼튼한 일상을 꾸려내기 위해 희생했을 부모님의 꿈과 재능이 애달프다.

결국 인간은 먹고사는 고역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제한된 존재인가요?

덧없는 질문으로 혼자 마음을 괴롭히는 것이다.



* 육수-


국물 음식을 만드는 일은 번거롭다.

그렇다고 한 가지 국을 많이 끓여 놓고 여러 번 먹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야...

그래서 다시마와 멸치, 표고버섯, 양파, 무, 대파 같은 재료를 끓여 육수를 우려낸다.

그러면 며칠 냉장고의 육수로 국, 찌개와 죽, 볶음, 만둣국, 떡볶이 같은 음식을 쉽게 만들어 낸다.


물론 소고기와 뼈로 사골국이나 사태, 양지로 국물을 내어두면 더 좋다.



* 지리멸과 건새우 볶음,

북어 보푸라기, 진미채 무침 -


도시락 반찬으로, 여행에 많이 가져갔었다.

이삼일 정도는 냉장고에 넣지 않아도 상하지 않고

(날씨에 따라 변수가 있다.

덥고 습한 날씨에는 꼭 냉장 보관!)

맛도 좋지.

단, 기름이 들어 간 음식은 시간이 지나면 쩐내가 나니 가급적 빨리 먹자.



* 장조림, 약고추장-


이것은 진정 밑반찬!

장조림은 기름기 적은 소고기, 돼지고기 모두 가능하다.

양파, 대파, 무를 넣어 푹 끓이면 설탕은 거의 넣지 않아도 달큼하다.

양념은 여러 번에 나누어 넣으면서 간을 맞추도록.


약고추장은 오래간다.

잘게 다진 소고기를 심심하게 양념해서 익힌 뒤 고추장을 오래 저어 되직하게 끓이자.

나는 잣은 잘 넣지 않는다.

기름기 많은 견과류를 넣으빨리 변함.



* 장아찌와 오이지, 젓갈, 게장, 김치 -


우리 음식 슬로푸드의 정점이다.

간장으로 만드는 무 장아찌는 직접 만든다.

나는 단무지를 좋아하지 않아 김밥에 무 장아찌를 넣는다.

매운 고추 장아찌는 잘게 썰어 여름날 물에 만 밥과 먹으면 덥다고 집 나간 입맛이 돌아온다.

오이지는 물에 담가 짠맛을 뺀 뒤 피클처럼 썰어 먹는다.

여름 음식.


젓갈은 짜서 요새는 평가가 떨어지는 듯하다.

잘 삭힌 조개젓을 물에 헹구어 마늘, 양파, 고추랑 양념에 버무려 뜨듯한 흰쌀밥에 먹으면 꼭 과식하게 된다.

명란젓은 쪄서, 구워서.

또 백 명란에 다진 파와 깨와 참기름, 고춧가루를 살살 뿌려 먹으면 맛있다.

성게 알젓은 우리 어머니가 잘 드셨다.

감칠맛이 으뜸.

간장 게장 게딱지와 비슷한 맛이다.

애정 합니다^^


나에게 김치는 있으면 먹고 없으면 할 수 없고, 지만.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김치로 만드는 음식은 정말 많다.

그냥도 먹고.

볶음, 국, 찌개, 죽, 전, 찜, 만두, 볶음밥...

거의 모든 고기, 생선, 오징어, 햄과 소시지, 어묵과도 잘 어울리는 진정 만능이다.

김장해두면 반찬 걱정 없다는 말을 실감한다.



자랄 때 먹은 음식들은 내 혀와 마음에 고착된다.

힘들 때 익숙한 맛을 그리워하고,

그 시절을 떠올리며 삶의 심연을 넘어가기도 한다.

사회복지도 없고 보험도 없던 그 시절 식구가 많고 가족의 범위가 커서 위기에 대응했다.



지금은 거의 낱낱의 개인이 불안정한 생계의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

그러니 공동체, 사회, 국가가 다소간 안전망이 되어 생존의 위험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

사람들이 닥쳐올지도 모를 위기를 걱정하고,

그래서 이기적으로 안정을 획득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사회는 얼마나 삭막할까.

 


코 앞으로 내미는 밥상은 아니지만 냉장고에 들어있는 반찬거리 정도는 되는,

그런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팬데믹이다.

모르는 서로가 사실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한 기회.


이 어려운 시기를 잘 넘기고 개개인의 생계에 더 안정적인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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