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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Jun 06. 2020

밥상으로 오시지요.

음식에 관한 단상 24

유난히 마음이 힘들어질 때가 있다.

특별히 나쁘다 할 일은 없었는데.

아니 한바탕 회오리바람 훑고 지나가,

이제 좀 잔잔한 햇살인가, 싶었는데.

풉, 세상이 뭐 그리 호락호락한 줄 아시나,

빗자루 타고 달무리를 날아가던 마법사는 커컥,  

 한 사발, 뿌리고 띠리링~ 달아나버렸다.

세상의 비극이 차례차례 눈앞을 행진하면서 장송곡을 연주한다.



나 또한 먹고사는 궤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밀려오는 파도에 어찌하면 조금이라도 편해볼까, 허우적거릴 뿐이다.

어차피 이럴 거면서 뭘 그리!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며 남다른 인생이라도 살  호기스러웠던가.

어제의 나에게 혀를 끌끌 차면서,

기분은 땅을 파고 들어 간다.

지하 1층, 아래 지하 2층, 아래, 그 아래...



밥상을 차리련.

끄응, 몸을 일으켰다.

당장 오늘 하루만 생각하자.

1단계,

먹는다.

먹는다.



펜을 들고 메뉴를 짜다가 장바구니를 들었다.

직접 보고 고르는 재미를 포기할 수 없지.

터덜터덜 시장으로 간다.

진열대에 놓인 재료들을 보자 짭짭,

식욕이 살아났다.


도가니탕,

+ 오징어 생채,

마늘종+ 건새우 볶음,

대구전과 부추전,

과일.


룰루~



핏물을 빼고,

한번 데쳐서 푹 끓여낸 도가니탕.

도가니는 흐물흐물, 국물은 꼬소하니 잘 끓었다.


슬쩍 삶아 꼬들꼬들해진 오징어는 채를 썰어

소금에 절인  채와 양념에 버무린다.

매콤 새콤, 간이 딱 맞는군.


마늘종은 지금이 철이다.

적당한 길이로 잘라, 

손질마른 새우와 간간한 양념이, 

달달 볶아져 맛은 조화를 이룬다.


전은 상 차리기 직전에 지져낸다.

종종 썬 부추 잔뜩, 매운 고추는 잘게 다지고, 밀가루 조금에 물은 찔끔.

치지직, 팬에 붓는다.


더해서 담백한 대구살에 소금을 살살.

밀가루와 계란 옷을 입힌 대구전은 언제든 환영받지요.


찹쌀과 흑미를 섞어 검정콩을 두어 지은,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밥도 완료.


환상적이군요.

 먹을게요.

이 따스하고 맛있는 밥상이 당연한 게 아니란 걸 이제는 안다.

뜨끈한 국물 한 술,

무 생채 한 젓가락,

밥 한 입.

아!

눈물까지 나려 하네.



 음식이 나에게 닿기까지.

수 백 년, 수 천 년을 쌓아 온 사랑의 역사가 있다.


아기는 두 분에게 내려진 축복이었다.

이 작고 여린 생명을 위해 인생을 바치겠노라,

삐약삐약 울기만 하는 빨갛고 주름진 생명체. 경이롭고 감격스러우셨단다.

아이를 잘 지켜내려 힘들게 일하고,

맛있게 먹는 그 모습이 좋아서 새벽부터 밥을 지었다.

뾰루퉁, 덩치가 커가는 아이는 들쑥날쑥 종잡을 수 없었지만.

짜증 부리며 돌아서는 그 뒷모습을 이해하려 부모는 마음을 잡았다.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포탄이 날아오는데 도대체 어디로 가야 피할 수 있을까, 발만 동동 구르면서.

나는 죽어도 좋으니 아이들을 지켜주십시오, 기도만 했지.

전쟁 통에 모든 것이 모자라서,

입성이 추레할까,

공부는 시켜야지.

입 벌려 모이를 구하는 아기 새처럼.

쏟아도, 부어도.

모자라기만 했다.

왜 나는 못나서 소중 자식들 고생시키나,

무척 괴로웠다.



온몸을 짓누르는 무게였지만.

그래서 버거웠지만.

자식들은 부모에게 살아가는 이유가 되고 힘이 되었다.

어머니의 어머니.

또 그 어머니의 어머니가 이쁜 내 새끼들 먹이겠다고 만들었던 음식.

어찌해야 더 맛있을까,

뭘 더 하면 내 자식에게 좋을까,

궁리와 고심을 거듭해서 만들어낸 한 끼 밥.

그래서 내 부모를 키워내고,

내가 먹고 자란 맛있는 음식들.



혼자 먹는 밥상에 당신들을 청한다.

이리 와 앉으세요.

밥 한술 드시면서 우리 옛날 얘기합시다.


살아생전 밥상 한번 차려드린 적 없는 아버지.

그래도 어머니는 딸이 차려낸 밥상은 받으셨네.

도가니탕은 어머니가 잘 드셨다.

덕분에 딸은 도가니탕을 잘 끓인다.



질펀한 음식보다 깔끔한 맛을 선호하셨다.

이러니 저러니 할 말은 다 삼키시고 힘을 다해 자식들 먹을 밥상을 차려내셨다.

나의 정성이 아이의 마음에 가서 닿기를.

 밥상으로 아이가 잘 자랄 수 있기를.

자식 앞에 놓인 밥상은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이었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자신을 바쳐 키워온 자식과

그 자식이 자라 또 그렇게 키워낸 자식의 자식.

절대 손 놓을 수 없었던 자식들을 위해 부모는 거름이 되었다.

내 부모, 부모의 부모.

또 그 부모의 부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조상들이 인생을 바쳐 키워낸 나.

내 안에는 길고 긴 시간,

수 천, 수 만의 인생이 들어있다.

흥할 때도, 쇠할 때도 있었다.

굴곡 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밥상에 둘러앉은 그분들은 말씀하신다.

너는 우리에게 귀하디 귀한...

네게 찬란한 영광을 구해서가 아니라 바로 너였기에.

그냥 너라는 존재였기에...


우리가 자식에게 기대한 것이란,

맛있게 밥 먹는 모습,

활짝 웃는 얼굴.

기운차게 달려가는 두 다리.

한 줌 흙으로 돌아간 부모들은 자식들의 수호신이 되어.

세파에 오그라든 자식에게 불려 나왔다.

저승에서 이승까지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물끄러미 자식 입에 들어가는 밥을 바라보면서.

내 자식 벌떡 일어날 힘이 되기를,

간곡히 기도하는.


우리는 그렇게 살아지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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