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꼬박꼬박 존다.
정신 맑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
먹는 약이 독해서인지 집중력이 떨어졌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극이 금세 해석되지 않는다.
사소하게 실수한다.
그래서 자꾸 자책한다.
장기 여행자들의 여행 블로그들을 보고 있다.
부부가 또는 혼자 몇 년씩 해외여행을 다니는 우리나라 장기 여행자들이 꽤 많은가 보다.
몇 년째 그런 블로그들을 계속 보고 있다.
하나의 여행기를 마치고 나면 그 여행기에 등장하는 다른 여행자들의 블로그가 잇달아,
아직도 읽을 여행기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예전에 단체 어학연수로 시작해서
대학생 배낭여행,
이어서 커플티 입고 해외 신혼여행을 다녀오던 유행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장기간 세계를 둘러보는 여행자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뭘 얻어내겠다, 내게 이익이 되게 하겠다는 비장한 각오가 아니라,
인생의 한 시기를 넓은 세상을 둘러보는데 쓰겠다는 담대한 자세다.
우리나라가 많이 여유로워졌구나, 싶다.
코로나 19 사태로 여행을 중단한 여행자들도 많던데, 실망이 크겠다.
여행지에 대한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여서
가봐야 할 곳, 그곳에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정보가 쏟아진다.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눈을 반짝이는 의욕 넘치는 여행자들은 입시 공부하듯 여행을 준비한다.
그러다 보니 장기 여행자들에게서 일정한 패턴이 보이기도 하더라.
서로서로 여행 경험을 공유하면서 서로의 여행이 닮아간다.
어디에 가면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이 있고, 들러야 하는 맛집이 있다.
유명한 관광지, 이른바 세계 3대 무엇 무엇.
가성비 숙소, 쇼핑, 체험과 관광 프로그램.
유행하는 전자기기 품목이 있고, 사진과 동영상 포즈도 비슷하다.
지역마다 빼곡히 리스트를 작성해서 숙제를 해내듯,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하나하나 완수한다.
짧은 시간에 많이 보고, 놓치지 않고 사진과 동영상을 찍으며, 온종일 분주하게 돌아다닌다.
여행만으로도 피곤할 텐데 정보를 찾고, 그걸 꼬박꼬박 실행하고.
다니면서 일일이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여행의 모든 것을 블로그에 올린다.
그동안 학교와 직장에서 얼마나 모범생으로 부지런하게 살아왔을지 짐작이 된다.
전지구 차원에서 해외여행이 중단되고 있다.
언제 재개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지만.
일반 사람들의 해외여행이 드물었던 예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벌써 사람들은 언제 여행을 갈 수 있을지 묻고,
경제의 상당 부분을 여행업에 기대 왔던 나라들은 해외여행자들을 받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여행 환경이 안전한 상황이 아니고.
위축된 여행 심리가 당분간 되살아나기도 어려워 보이는데요.
한동안은 해외여행이 힘들겠지.
다시 여행이 시작될 때는 방식에도 변화가 있겠다.
장기간 해외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적지 않던데.
이 여행 중단 시대에 좀 더 여행 방식을 고민하고.
여행 지역에 대해 더 깊고 더 넓게 준비해서 한층 성숙한 여행자로 성장하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국내 여행이 보다 활성화되면 좋겠다.
우리나라 곳곳이 보다 매력적인 여행지가 되어야 할 텐데.
그렇다고 여기저기 돈만 들여서 이상한 조형물 세우고,
커다란 숙박업소나 식당 짓는 거 말고.
시끄러운 축제만 자꾸 벌여서 자동차와 사람들 끌어모으는 것 말고.
지역을 고요하고 잔잔하게 잘 지켜서.
사람들마다 곳곳에 숨은 나만의 장소를 찾아내,
그곳의 고유의 아름다움과 멋을 느끼고 충분한 휴식과 안식을 누리면 좋겠다.
대단한 행위나 절경이 필요한 건 아니다.
느릿느릿 산책, 벅찬 석양, 졸졸 물소리, 한 줄기 바람, 차 한 모금,
자세히 들여다본 꽃 한 송이, 달콤한 낮잠- 이런 시간으로 우리는 그곳에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여행사에서 프로그램을 짜줄 수 있는 게 아니다.
먼저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은 있어야겠지만,
각 개인이 느끼고 생각하고 찾아내야겠지.
무엇보다 감수성을 섬세하고 풍부하게 지켜야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