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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Jun 21. 2020

수육 한 덩어리

음식에 관한 단상 29

고깃덩어리를 삶는 음식은 아마 고기 음식에 있어 가장 기초적이고 쉬운 조리 방법이 아닐까.


닭은 삶으면 백숙이라 부르고.

다른 고깃덩어리를 삶은 것은 수육이라 부른다.

우리 집에서는 그렇다.

삶은 고기를 얇게 저민 것은 편육.

요새 시중에서 편육이라고 부르는 돼지 머리 고기를 삶아 납작하게 눌러 편으로 썬 것은,

그냥 '돼지 머리 고기 누른 거'라고 길게 불렀다.

삶은 소머리편육 잘 먹었다.

(더 있었다. 내 입에는.)

우리 어머니는 우설 편육, 즉 담백한 소 혀 삶은 고기를 좋아하셔서 소 혀를 정육점에 특별히 주문하셨다.

얼마나 컸던지.



소 머리든 돼지 머리든 한 마리 단위로 미리 주문한다.

그러면 맛있게 삶아서 편으로 썰어 집까지 가져다주었다.

지금처럼 공급자가 만들어 소량으로 나눠 파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양이 많기 때문에 보통 잔칫날에 맞춰서 잔칫상에 올리는 음식이었다.

고급 음식은 아니었지만  먹음식도 아니었지.



돼지고기 수육은 냄새를 잡는 것이 관건이다.

아버지가 좋아하셔서 돼지고기 편육은 우리 집 밥상에 자주 오르던 메뉴였는데.

여러 부재료를 넣고 삶은 돼지고기 덩어리는 건져내어 무거운 것으로  밤새 눌렀다.

두꺼운 나무 도마, 돌, 쇠 냄비 같은 무게 있는  도구들을 동원해서 고기 덩어리를 직육면체의 네모 모양으로 만들어 다.

그래서 썰어 내면 쫄깃쫄깃 얼마나 먹음직한지.

새우젓을 다지고 깨, 고춧가루, 다진 파와 다진 마늘, 참기름 등으로 버무린 양념과 같이 낸다.

우리 아버지는 돼지고기 편육은 꼭 이 새우젓 양념에 찍어 드셨다.



소고기 수육은 삶은 고기에 우선하는 용도가 있다.

우리 집 명절, 잔칫상에는 식사로 따듯한 녹말 국수를 올렸는데,

면에 고명을 얹어 소고기 국물을 말았다.

(원래는 소고기 국물에 돼지고기와 닭 국물도 섞는 거.

과정이 번거로워 보통 소고기 국물만 쓰곤 했다.)

소의 양지와 사태로 국물을 끓이는데,

국물 맛이 충분히 우러나기 전 고기 맛이 좋을 때 일부는 건져낸다.

요게 수육이 된다.



소고기 수육은 편으로 썰어서 밤, , 당근, 오이, 새우, 버섯 같은 재료들과 함께 냉채를 만들었다.

냉채는 잣을 갈아 넣은 부드러운 잣 소스 또는 매콤한 겨자 소스로 버무린다.


또 소고기 육은 국물을 자작하게 부어 따듯하게 내기도 하는데,

주로 간장을 기반으로 하는 맵싸한 양념장에 찍어 먹었다.

톡 쏘겨자 양념과도 잘 어울린다.


따듯하게 내는 녹말 국수에 고명은 고춧가루를 넣어 버무린 숙주나물과 오이무침, 납작하게 썬 무 생채와 함께,

결대로 잘게 찢어 갖은양념을 한 수육을 올린다.

소복하게 고명을 얹은 국수는 맛도 좋고 보기에도 좋다.



국물 맛을 내느라 마지막까지 삶아 낸 소고기맛이 떨어진다.

국물 맛을 제대로 내기 위해서는 소고기가 많이 들어가니 고기가 남는다.

이렇게 진국이 빠진 삶은 소고기를 결대로 잘게 찢어서 간장, 소금, 다진 마늘, 다진 파, 고춧가루, 참기름, 깨소금 같은 갖은양념에 버무린다.

밥이랑도 먹고,

밀국수에도 고.

김치찌개 끓일 때도 넣고,

맨입으로집어 먹었다.

잔칫상의 부산물이랄지.



여행기를 읽다 보면 가끔 어느 나라 시골 잔치에 초대되어 잔칫상을 받았다, 는 일화가 등장하더라.

아직도 지구 위에서는 결혼, 명절, 세례, 생일 같은 인생의 고비마다 집에서 큰 잔치를 벌이고.

이때 마을 사람들을 불러 잘 차린 밥상대접한다.


우리나라도 그랬었다.

50년 전에 있었던 우리 할머니 칠순 잔치에,

모든 자손들이 모여 잔치를 열었다.

아는 사람들이 끝없이 찾아와 할머니의 건강과 장수를 원했는데,

지역 걸인들까지 마당에 따로 밥상을 받았다.



식민지 시절과 전쟁이라는,

오랜 시간의 궁핍과 비참함을 견디고,

피나는 노력으로 가난에서 막 벗어나던 시절.

먼저 형편이 나아진 사람들이 아직 고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친지들에게.

잔치는 명절과 통과의례를 핑계로 벌이는 음식의 향연이었다.

맛난 음식을 수북하게, 아낌없이 차려서는.

허리띠 졸라맨 밥상에서는 볼 수 없는 호사도 누려보고.

고된 생활에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하면서 우리 힘을 내보자!

이런 응원과 격려와 각오의 자리랄지.

그 날, 그 자리에는 삶은 고깃덩어리, 수육이 있었다.



아마 당시 생신, 결혼식, 집들이 같은 잔치에 가장 흔하게 등장했던 메뉴는 돼지고기 편육, 동태전을 비롯한 전 종류, 불고기, 닭백숙, 홍어회, 나물들,  잔치국수, 떡, 과일이었을 것이다.

머리 고기포함해 돼지고기 편육은 김치와 짝을 이루어 잔칫상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는,

남자 어르신들께는 술안주로.

여자와 아이들에게는 밥반찬으로 존재감을 가졌다.



남의 잔칫상에 와서 기쁘기만 했을까.

답답한 처지에 안 그래도 우울한 심사가 남의 집 흥겨운 잔치로 더 서글퍼진 손님도 있을 테고.

꼭 와야 할 자리라 오긴 왔는데 형편이 어려워서 얄팍한 부조금으로 손이 부끄러웠던 새가슴 친지는,

마음을 달래려 자꾸 술잔만 들이켰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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