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여행가- 엉겁결에 출발

상상 여행 2

by 기차는 달려가고

날은 잔뜩 찌푸려 있다.

비만 안 오면 돼.

장마는 소강상태라고 했다.

집에서 서울역까지는 버스를 탄다.

창가 자리에 앉는다.

여행가는 풍경을 사랑하거등.

서울역까지 가는 길은 뭐, 시끄럽고, 복잡하고, 막히는.

전혀 사랑스럽다고는 할 수 없는,

그냥 대도시 풍경입니다만.



서울역 대합실은 후덥지근하다.

대부분 마스크는 꼈지만 예상보다 사람이 많다.

오, 다들 잘 돌아다니나 봐.

웅성웅성, 여행 가방을 가진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는 모습에 기분이 들뜬다.

전광판에는 출발, 도착 기차가 착착, 순서를 바꿔가며 표시되고,

방송은 웅얼웅얼 출발 열차의 소식을 알린다.


기차 시간표를 본다.

동쪽으로, 남쪽으로- 전국의 도시들이 표시되어 있다.

오, 다 아는 지명들.

맛있는 음식이 잔뜩 올라간 밥상을 받은 아이처럼 도무지 뭣부터 수저를 뻗을지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죄다 가볼 테야.


아, 그런데 오늘 어디부터 시작하나?

산도, 바다도, 도시도.

눈웃음치는 호객꾼처럼 이리 오시라, 오시라 손짓하여 부른다.

쏟아지는 초대장에 으쓱해져서는,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욤.


밥부터 먹어야지.

허기가 올라온다.

(사실 밥 먹으러 왔다.)

식당도 많지.

층마다, 구석구석.

서빙 받는 전문식당부터 일반 음식점.

패스트푸드에, 푸드코트며, 스낵코너까지.

다양한 가격대로, 갖가지 메뉴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여행가는 여행가의 메뉴에 익숙해져야 한다!"

편안한 좌석에 앉아 분주한 역 광장을 바라보면서 접시에 담긴 요리를 받아먹는 취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비용 앞에서 여행가는 겸손해져야 한다.

왼손에 김밥을 들고 우걱우걱.

휴대폰을 쥔 오른손으로 몇 군데 기차 시간표를 찾는다.


앗, 10분밖에 안 남았다.

지금은 직접 창구로 가야 결제가 된다.

먹던 김밥 조각은 마저 입에 욱여넣고,

같이 산 찰떡 한 봉지는 손에 들고 후다닥 내달린다.

표를 사고, 층계를 팡팡 뛰어내려와

플랫폼에 서있는 기차의 객실 번호를 확인하고 냉큼 뛰어오른다.

찾았다, 내 자리!

스르륵,

주변 풍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본 기차는 서울역을 출발하여 영등포, 수원, 천안,... 에 정차하여,

... 최종 목적지인...

고객 여러분께서는...



김밥 마지막 조각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하면서 작가님은 손으로 김밥 포장지를 뭉친다.

남은 콜라도 쭈욱.

평소에는 콜라를 먹지 않지만 영혼이 여행을 떠나버렸으니,

입맛도 여행가답게 바뀌어버렸다.



음식을 다 먹었는데 김밥집에 계속 앉아 있을 수는 없다.

가게를 나오자 역사 유리벽 바깥으로 쏟아지는 폭우.

엉, 우산 없는데.

천정을 날던 비둘기 한 마리가 바닥에 내려앉더니 슬금슬금 다가온다.

비둘기 눈치를 보면서 슬금슬금 작가님은 자리를 피한다.



차창 밖으로 쏟아지는 폭우를 바라보며

여행가는 남으로, 남으로 향하고 있겠지.

기차는 아직 수도권 건물 사이를 지나고 있을 것이다.

저렴이 표를 샀거든.

시간이 좀 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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