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다 또는 글을 읽는다는 것은,
(물론 다른 콘텐츠도 마찬가지인데)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과 다를 수도 있는 책 속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말이다.
나는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살아가는 실제의 세상과 책 속의 세상을 넘나들면서
현실과 머릿속이 해리되는 묘한 느낌을 받는다.
이를테면 '파브르의 곤충기'를 읽으면서 나는, 곤충을 바라보는 파브르의 섬세하고 애정 어린 시선을, 입가에 미소까지 띠면서 따라가지만.
실제의 나는 여전히 벌레만 보면 꺅꺅, 도망친다.
동시에 상반되는 대응이 가능한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책을 읽음으로써 곤충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은 높아졌다.
전권 완역한 '파브르 곤충기' 강추!)
팬데믹으로 꼼짝달싹할 수 없는 현실.
방구석 쫄보는 상상 속에서 여행을 떠난다.
어디로 갈지,
얼마나 길게 여행을 할지.
혼자?
음, 결정할 게 많군.
어디 어디 가지?
기차 탈까?
아니, 아니야.
떠나기 전에 미리 다 계획을 세우고 시간표를 완수하는데 급급한 여행은 그만 할래.
일단 역으로 가서 갈 곳을 정하자.
도착한 뒤에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무계획 여행!
짐은 챙겨야지.
옷은, 음, 빨아서 말리기 쉽고, 부피 작은 걸로.
신발은 일단 운동화?
아니다, 트레킹 샌들 신을까?
먹을 건 뭘 넣지?
전기주전자 작은 거 하나 넣을까?
짐이 늘어나면 나만 힘든데.
어렸을 때부터 기차를 타고 한없이 세상을 떠돌고 싶었다.
기차에서 자고 기차에서 일출을 맞으며 낯설고 말이 통하지 않는 작은 마을에 내리는 상상을 했다.
손에 든 가방은 무겁고 배는 고픈데,
마을 사람들은 거리를 두고 쏘아보듯 냉랭하게 이방인을 쳐다본다.
역사 앞 작은 광장에서 여행자는 어디로 가야 하지?
막막한 피로감을 느낀다.
소설 속에서 야간열차, 침대차는 언제나 낭만적이었고,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키워드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야간열차도 극히 드물었고.
(부산이나 여수에서 늦은 밤에 출발해 새벽에 서울역에 도착하는 열차가 있긴 했었다.
지금은 모르겠네.)
섬처럼 고립된 작은 나라는
밤새 덜컹거리는 침대차에서 날이 밝아오는 새벽을 맞이하는 일이 불가능했으니까.
지금은 유럽에서도 야간열차가 줄고 있다고 한다.
저가항공과 야간 버스라는 시간과 비용의 경쟁자를 이길 수는 없는 듯.
유럽, 인도, 동남아, 중남미에서는 야간 버스로 하루 혹은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장거리 이동을 하는 경우가 아직도 많은가 보다.
여행자들은 길고 불편한 버스에서 뻐근한 근육과 초췌한 얼굴로 내려 기지개를 켜고는,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거리로 나선다.
방구석 쫄보는 짐을 넣었다 풀었다,
배낭을 멨다 내렸다, 를 반복하면서.
겨우 결정한 배낭을 메고 트레킹 샌들을 신고,
반소매 셔츠에 무릎까지 오는 바지를 입고
마스크를 끼고 모자를 쓰고.
서울역으로 향한다.
기분 전환할 겸 서울역에 가서 밥 먹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