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담양에 간 적이 있었다.
서울은 아직 써늘한 이른 봄이었다.
남쪽으로 몇 시간 갔다고 담양은 봄기운이 물씬했다.
읍내에 머물렀는데, 오래된 풍경이 남아 있는 마을은 한가롭고 조용했다.
동네를 걷다 보니 제법 규모가 큰 기와집들이 텅 빈 채 땅속으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꽃들이 활짝 피어나는 마을은 적막할 정도로 고즈넉했고,
긴 시간 관방제림을 지켜온 나무들은 굵고 높았다.
주변을 둘러서 늠름한 산들, 푸른 대나무 숲,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쭉쭉 뻗은 길.
고요하고 아름다운 동네였다.
* 죽녹원 대숲
죽녹원 대숲에서 바람이 이는 소리를 들었다.
높고 가는 대나무 줄기들이 덩어리째 흔들리면서 수많은 이파리들을 파르르 떨리면서 지나가는 바람소리는,
대나무 숲이 없는 서울에 살아온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곳에 머물러야 알게 되는, 마음 설레게 하는 소리였다.
* 죽순회
흐르는 강과 조용한 마을을 바라보며 평상에 앉아 죽순회를 먹었다.
데친 죽순을 초고추장에 버무린 음식이었다.
달콤하면서 매콤한 초고추장의 맛은 훌륭했고,
부드러우면서도 아삭한 죽순의 식감이 일품이었다.
우리 집에서는 예전부터 죽순을 좋아해서
죽순 철이면 경동시장까지 가서 죽순을 잔뜩 사 오곤 했었다.
싱싱한 죽순은 얼른 볶아먹고, 닭개장에 넣어 끓여 먹고.
두고두고 먹겠다고 죽순을 말려도 보고, 절여도 보고, 데쳐서 냉동실에 보관도 해봤지만.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죽순은 담양 분들 솜씨에 기대는 걸로.
* 담양의 밥상
담양에서 자랑하는 몇 가지 음식이 있다.
고기 요리는 서울에서도 잘하고 집에서도 해 먹으니 새롭다, 할 만한 건 아니었다.
한정식 식당을 찾았다.
와...
감탄이 절로 나오는 수십 가지 반찬이 오른 큰 상이 차려진다.
불고기와 생선 구이야 우리나라 어디나 있는 메뉴이니 감탄할 것은 아니었는데.
이름 모르는 나물들과 열매로 만든 새콤달콤 짭짤한 장아찌들이 참 맛있었다.
우리 어머니 솜씨가 부족한 장아찌 종류.
간이 적당한 각각의 맛과 향을 지닌 이름도 다 알지 못하는 식물들은 입맛을 돋웠다.
* 그리고 관방제림 할머니
담양의 관방제림은 정말 좋았다.
신라시대 최치원이 조성했다는 그윽한 함양의 상림숲도 좋아하는데.
비슷한 용도인 관방제림은 하나하나 나무들이 우람하고 씩씩했다.
나무 아래 벤치에 조그만 할머니 한 분이 오두막이 앉아계셨다.
길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자꾸 말을 거시는데,
사람들은 무심하게 지나쳐버리니.
우리 모녀가 할머니 곁에 앉았다.
단기 기억이 망가졌는지 계속 이름이 뭐야, 어디서 왔어, 질문을 반복하시는데.
아랫동네에 사신다는 할머니는 우리에게 술술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내신다.
남편 분이 "놀고먹고 대학생"이라 자신이 생계를 꾸려야 했단다.
그 작은 몸에 담양의 죽제품을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배에 안고, 양 팔과 다리에 묶어서.
동글동글 대나무 사람이 되어서 서울까지 물건을 팔러 다니셨단다.
그사이 집에서는 어린 맏딸이 살림을 도맡아 남동생들 밥을 해먹이면서...
활달하게 쉬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가던 할머니는 어린 딸이 살림을 맡아 고생했던 부분에서 목이 메셨다.
...
재난의 시기.
양식 거리가 있으면 끓이고,
떨어지면 산으로 들로 나가 초근목피로 목숨을 부지했던.
그래서 온갖 고기의 부산물,
생선 찌꺼기,
떫고 쓰고 독한 모든 열매와 나물을 삶고 데치고 우려내서는.
소금에 절이고, 식초에 담그고, 간장으로 삭혀서 사람이 먹을 수 있게 만들어 버린.
그것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지경까지 만들어 낸.
그 대단한 생존의 의지와 노력으로 밥상을 차려 내었으니.
우리는 역경 속에서 그렇게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덧붙여서-
할머니로 하여금 혼자 생계를 도맡게 하고 말년에는 오랫동안 병으로 자리에 누웠던 할아버지는,
할머니께 고맙다, 미안하다, 사과하시고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그걸로 살아온 시간의 설움과 원망을 스르르 흘려버릴 수 있었던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