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땅의 넓이

by 기차는 달려가고

정읍에서 순창까지 버스를 타고 간 적이 있었다.

지방 도시에는 공영버스터미널이 있다.

서울 같은 대도시를 연결하는 시외버스와

지역의 구석구석을 오가는 지역 버스가 모두 출발하고 도착하는 곳이다.


매표소가 있고, 대합실이 있고, 화장실, 매점, 때로는 식당도 있다.

지역을 다니는 버스에는 젊은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외지인도 없이 지역 노인들 전용으로,

장날이 아니면 텅텅 비어서 운행한다.

버스 기사는 승객들을 대부분 기억하는 눈치고.

그래서 우리 모녀처럼 이색적인 분위기의 낯선 사람들에게는 매우 친절하거나 괜히 퉁명스럽거나, 하여간 어색해하신다.



여행을 갔던 어머니와 나는 버스 출발 시간보다 일찍 순창행 버스가 출발하는 장소로 갔다.

그곳에는 우리보다 먼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나와서 버스를 기다리고 계셨는데.

어디서나 흔히 그렇듯이

할머니들은 버스가 서는 바로 그 자리에 의자를 차지하고 계셨고.

할아버지 몇 분은 주변에 각자 흩어져 서 계셨다.


나는 자리를 만들어 우리 어머니를 앉게 해 주신 할머니들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가방에서 늘 들고 다니는 간식을 꺼내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권했다.

(과자, 사탕, 떡, 과일 같은 간식을 갖고 다니면 쓸모가 많답니다.)

할머니들은 쾌활하게 웃거나 마침 배고팠어, 드러내어 반기시는데.

할아버지들은 매우 매우 쑥스러워하시며 어쩔까 고민하다 마지못한 듯 떨떠름하게 손을 내미신다.



그렇게 말문을 열어서 버스가 오기까지 흔한 인사.

즉,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어디 사는지, 같은 부담 없는 얘기가 오갔다.

우리가 순창에 간다니까 할머니 한 분이

칠십이 넘도록 이 부근에 살고 있지만 순창까지 가본 적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할머니 사시는 곳은 정읍에서 순창 방향으로 거리가 반이 좀 안 되는 곳이고,

정읍과 순창은 바로 이웃한 지역이었는데 말이다.

큰 장을 보거나 집안일이 있을 때는 정읍 시내로 가끔 나오지만,

반대 방향인 순창으로는 가는 일은 없었다고.

"서울 사람도 가는 순창을 나는 가까이 살면서도 여태 못 가봤어." 하며 하하 웃으셨다.


경치는 절경인데 길은 구비구비 가팔랐다.

다변에다가 산만하기 그지없는 기사분 때문에 마음을 졸였던 버스 타고 가는 길.

풍광이 기가 막힌 내장산을 넘어 할머니들은 버스를 내리셨고.

이후 한참 동안 버스에는 우리 모녀만 남았다.

그 길은 평탄해서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마음껏 구경할 수 있었다.



매일 출퇴근하는 길이라도 내 볼 일이 없으면 스쳐 지날 뿐,

일부러 가보지는 않는다.

하긴 내 동네여도 볼 일이 없으면 딴 세상이지.

내 인생과 상관이 없으면 이웃집인들 눈에 들어오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실제 몇 년씩 살아보는 동네,

그래서 그 동네는 좀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지역은 지극히 한정적이다.

다른 동네에 관한 실제 지식은 거의 없다고 봐야지.


어쩌다 스친 경험으로, 또는 세상에 떠도는 선입견이나 편견으로 그 지역을 안다고 착각하는 것일 수 있다.

또 어디를 가나 자기 안의 세상에 사로잡혀서 눈으로 보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안의 허상에 속아 인생을 낭비할 수 있다.



무엇을 안다, 고 자신 있게 말하기가 쉽지 않다.

그냥 나라는 반사경에 비추는 인상.

순간적으로 내 마음을 흔들었던 느낌일 뿐.


이 여행기는 내 마음에 남은, 그런 곳들의 느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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