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끄적끄적

by 기차는 달려가고

문득 1970, 80년 대.

서울의 여름밤 풍경이 떠올랐다.

그때는 경제가 성장세여서 극도의 빈곤에서는 벗어난 상황이었다.

자식들은 부모가 겪어온 극심한 고생에서 면하기를 바라며 교육에 모든 자원을 쏟아부었다.

'배워야 산다!'가 슬로건이었지.

내가 살던 서울은 그랬다.



우리 또래가 지방에서는 성적이 최우수가 아니면 대개는 중학교까지 다니고 공장으로, 가게로 돈 벌러 나갔다는데.

서울에서는 상업학교를 가던,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서 취업반(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대학교 진학 대신 취업에 집중하는 학급을 따로 구성했다.)을 가던.

고등학교까지는 가르쳐야지, 했었다.(고 나는 생각하지만,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도)


정치적으로는 암흑이고,

사회적으로 부정이 만연했으며,

당장 하루하루가 고생스러웠지만.

그때는 다들 미래에는 모든 것이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낙관적인 분위기였다.



1970, 80년 대는 또 건설의 시대여서 상업용 빌딩만이 아니라 주택도 상당히 많이 지었다.

우선은 절대적으로 사람들이 살 공간이 부족했다.

지붕만 있으면 칸칸이 방을 나누어서 한 방에 여러 명이 함께 썼다.

또 주거 공간이 있다 해도 너무 허름해서,

난방이 되고, 상하수도가 있고, 천정에 물이 새지 않는,

안전한 주택이 절실했었다.

대개는 20~30년 뒤에 아파트 단지와 빌라로 재건축되어 때로는 금싸라기가 되기도 하는 운명이 된.


고등학교 때 과외를 받고 어두운 밤에 버스를 타고 집에 오다 보면,

길에 누워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운이 좋으면 담벼락에 붙여놓은 평상에.

그도 안 되면 길바닥에 종이 한 장 깔고.

한쪽 팔로 눈을 가린 사람이 버스가 지나가는 라이트에 등장했다가 사라지곤 했었다.


아마 좁고 얇은 방은 찜통이어서,

땀을 뚝뚝 흘리며 국수 한 그릇으로 저녁을 때우고

사람 체온이라도 없는 길에 나왔겠지.



옛날에 고생했던 시절에서 차원이 다르긴 하지만 양상이 달라졌을 뿐.

요새 젊은 층도 여전히 집으로 고통받고, 생계는 불안정하며, 장래는 보이지 않는다.

편하게 살기를 바라며 부모가 뼈 빠지게 가르쳤던 자식 세대 또한 전반적인 우리 사회의 경제 수준은 좋아졌음에도,

개개인이 겪는 생활의 무게는 여전하다는 사실은 참 좌절감을 준다.



왜 우리는 행복하지 않은 것일까?

결국 인생은 고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이 시대의 과제는?


코로나 블루가 짙어지는 것 같다.

마음이 점점 더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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