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장원에서

끄적끄적

by 기차는 달려가고

흰 머리카락이 많이 올라왔다.

동네 미장원도 염색 비용을 꽤 받는다.

꼼꼼하게 바르기만 하면 되는데 굳이 비싼 값을 치를 필요가 있나, 싶었다.

(긴축 재정 중;;)


지나다가 좀 쌀 것 같은 미장원이 보이길래 문을 빼꼼히 열고 가격을 물었다.

긴 머리를 흔들면서 들어와, 들어와서 얘기해.

대뜸 편안하게 말씀하시는, 미용업 앞치마를 두른, 꽤 나이 드신 분이 나를 잡아당겼다.

(1인 미용실이었다.)

주책스럽긴 했지만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키치적인 감각의 화려한 스타일이 큭, 별스럽군, 싶었지만,

왠지 짠한 마음도 들었고.

아무렴 어때, 무엇이든 시큰둥한 기분이기도 했다.

그렇게 발을 들여놓고야 말았네.



족히 20~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동네 미장원 스타일의 인테리어는 그래도 깔끔은 했다.

소파에는 할머니 한 분이 앉아 계셨고 벽에 걸린 TV에서는 노랫소리가 왕왕거렸다.

나는 염색을 하기로 했고,

자신의 붉고 긴 머리카락을 보이면서 이 색깔 어때, 권하시는데.

깜짝 놀란 나는 늘 하던 어두운 갈색을 요청했다.


염색약을 휘저을 동안 미용사는 소파의 할머니와 TV의 가수들을 얘기한다.

애들이 얼마나 착한지 몰라, 저렇게 서로 위하고 의지하니까 얼마나 이뻐.

내 머리카락에 염색약을 바르기 시작하면서 할머니는 이따 다시 올게, 자리를 뜨셨고.

내게 집중하기 시작한 미용사께서는 말의 폭포수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한 시간 남짓 미장원에 앉아 있는 동안 몇 사람의 인간극장을 들었는지.

소파에 앉아 계시던 동네 터줏대감 할머니 인생 스토리부터,

아마 칠십 세 언저리인 것 같은(본인 나이는 절대 말씀 안 하심) 미용사의 과수원집 딸 시절부터,

그 과수원이 서울시에 편입되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되기까지 서울시 역사.

결혼과 남편, 자식들.

동네 사람들의 흥망성쇠에 이르기까지.


미장원 가운을 뒤집어쓰고 머리에 염색약을 바른 나는,

홍수처럼 쏟아지는 말의 폭풍을 그저 들을 수밖에 없었는데.

내가 이제는 인생을 좀 알았는지,

이렇게 저렇게 살아온 사람들의 인생행로에 귀 기울일 수 있었다.



우중충한 장마철에 잠깐 드는 햇빛처럼,

어쩌다 주어지는 보상에 속아,

희망이라는 표지판에 기대어 어렵고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인생은 결코 해피엔딩이 아니고,

잠깐잠깐의 해피한 순간이 있을 뿐이다.


계산을 치른 내게 여주인은 활짝 웃으면서 고맙다고 고맙다고.

오실 손님을 기다리면서 미장원 문을 열고,

오늘 와주신 손님께 감사하면서 미장원 문을 닫는다고 말한다.



아, 그런데 머리 색깔 너모해.

완전 시골 신사 머리처럼 시커먼...


자가격리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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