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쓸 수 있는 에너지의 총합

by 기차는 달려가고

60년을 살아도 인생에 관해서나 세상에 대해서

"바로 이거야!" 단언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다만 몇 가지에 관해서,

그런 것 같은데? 정도로는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내가 본 바에 의하면' 이라든가.

'내가 경험한 범위에서 말한다면'이라는 전제를 달고서.



내가 본 바에 의하면, 하고 말할 수 있는 것 중에 사람이 쓰는 에너지에 관한 게 있다.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쉬지도 않고, 끊임없이 야망을 쏟아내면서.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고, 다음 목표로 매진한다.

평생 맹렬하게 달릴 듯이 보인다.


타고난 체질은 있는 것 같다.

애당초 비실비실 기운이 없는 나는,

(예, 물론 수다를 떠는 순간은 다릅니다만) 경이로운 시선으로 에너자이저들을 바라본다.

와, 나랑은 아예 다르게 태어난 사람인 거야.

그래서 흉내 낼 엄두를 내지 않는다.

느릿느릿, 쉬엄쉬엄 하지 않으면 내가 먼저 쓰러지기 때문에.



나는 뭔가를 완료하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잘 분배하고,

중간중간 쉬어서 과열을 방지하며.

에너지가 방전되지 않도록 에너지 보급 또는 재생의 기간이 필요하다.

종료 시까지 시종일관 달릴 수는 없는 체질이다.

심신 모두.


신체적 에너지와 마음의 에너지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몸이 무너지면 마음을 지탱하기 어렵고,

마음이 무너진 사람은 몸의 에너지가 갈팡질팡 제 갈 길을 못 찾는다.


우리 사회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마음의 에너지를 잃은, 아니 마음의 에너지는 아예 키우지도 못한. 이른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함부로 휘둘러댄 에너지의 처참한 행태를 목격해왔다.

지금도 막장 드라마를 보고 있지.

그들이 예전만큼 날뛰지 못하는 건 우리가 이 사회의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온 결실이다.



젊을 때 성공가도에 올라 타 온 힘을 다 쏟은 사람이 어느 순간 탈진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타고난 에너지의 양이 많더라도 중간중간 보충하지 않고

짧은 시간에 과도하게 에너지를 써버리면,

갑작스럽게 엔진이 서버린다.

충전의 기회가 있을 때 멈춰 서서 충전도 하고 다른 문제가 없는지 돌아도 보아야 한다.


또 몸보다 마음이 먼저 무너져 갈지자로 비틀거리는 바람에 제 발로 폭망 한 사람들도 여럿 보았다.

몸의 에너지와 욕심의 에너지는 한껏 키웠지만,

마음은 황량한 폐허였던 거지.

본인이 먼저 괴로웠을 것이다.

괴로움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마음을 아름답게 가꾸는 대신,

자신을 괴롭히는 욕망과 탐욕만 더 키운 탓에 더는 손볼 수 없을 만큼 망가져버렸다.



에너지의 양이 적은 사람은 천천히 가는 거다.

부하가 많이 걸려도 안 된다.

중간중간 보충도 잘해줘야지.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러니까,

노자 책을 옆에 끼고 흥얼흥얼 노래도 부르면서 하늘도 쳐다보고.

숲길을 걷고 지나가는 개미랑 대화도 하면서.

마음을 다스리고 내 속도를 지켜야 한다.

아끼고 아끼다가

요기로구나! 울림이 쾅 왔을 때.

에너지를 아낌없이 쏟아붓는 거다.



덧붙여서,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에너지를 단번에 쏟아붓는, 휴식을 죄악시하는 분위기였다.

사람은 쓰다 버리는 소모품이니 그들의 에너지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사용자 위주의 사회였다.

쉬는 날 없이 맹렬하게 일만 하고,

그 스트레스는 술과 유흥으로 묻어버리는 막무가내 행태는 이제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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