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2월의 기억

by 기차는 달려가고

언제는 우리나라가 조용했냐만은.

1987년은 시작부터 힘들었다.

박종철 학생이 고문으로 죽음을 당하고.

군사 정권은 그 사실을 감추고 호도하고 덮어버리는 과정에서 이미 국민들의 진을 다 빼놓았다.


나같이 새가슴에 이기적인 사람은 고개를 뒤로 빼고 뉴스를 멀리 했지만.

학생들이 들고일어나고, 민주 인사들이 몸을 던지고, 넥타이부대까지 거리에 나와 최루탄에 시달린 끝에.

살인 정권은 하수인에게 몽땅 뒤집어씌우는 방식으로 범죄를 쪼금 인정하고.

체육관에서 인간 거수기로 치르던 대통령 선거를 겨우 직선제로 바꿀 수 있었다.



민주주의는 쉽게 오지 않았다.

12월 대통령 선거 날짜를 잡았지만 정권과 기득권 세력이 노태우를 당선시키기 위해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는 마당에.

민주계열 김영삼과 김대중은 후보 단일화를 이루지 못하고.

사회는 아수라장이었다.


노태우가 당선되면 그간의 희생은 보람 없이 군사독재가 이어질 것인데.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지지자들은 양분되었다.

나야 뒷동산에 올라앉아 먼발치에서 세상 동향을 구경이나 하는 사람이지만.

그 시끄러운 과정에 너무나 실망되고 피로해진 나는,

커다란 여행 가방을 꾸려 선거 이틀 전에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버렸다.

기대할 게 없다, 했지만.

그래도 기적이 일어나서 몇 달 뒤 내가 돌아오면 다른 세상이 되어있기를 바랐다.


프랑크푸르트 거리를 헤매고 있을 때 예상대로 노태우가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나는 한국 소식에 귀를 틀어막았다.



열흘 뒤에 비엔나로 갔다.

비엔나에서 나는 후배네 집에 있었는데,

문화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친구였다.

함께 청년들을 대상으로 기획된 영화제에 가기도 했고, 소극장으로 연극을 보러 가기도 했다.

음악회도 갔지.


또 내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우리나라 대기업에 인턴으로 한 학기 서울에 와 있었던,

그때 음악회에 갔다가 알게 되었던 비엔나 대학 경영학과 여학생이 있었는데.

그 친구는 비엔나에 온 나를 자기 친구들 모임에도 데려가고 스위스 여행도 함께 갔었다.



우리 세대는 항상 거대담론,

즉 국가, 사회, 민족-의 범위를 나의 일로 여겨서,

나 자신의 문제와 뒤섞어서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의무감이 있었다.

(사실은 극히 일부였더라.

개인의 영달 외에는 관심 1도 없었던 엘리트들이 대부분임!)


그런데 두 달 동안 서유럽을 돌아다니고 또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문화를 슬쩍 보면서 내가 받았던 인상은.

어느 정도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경제적으로도 비교적 여유롭고 안정적인 사회에서는,

각 개인이 자신의 소소한 문제에 매몰되기 쉽다는 점이었다.

나의 사랑과 미움, 나의 부와 빈곤, 나의 집과 휴가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범위를 넘어서 공동체의 문제를 내 문제로 여기기는 어려운가 보구나, 싶었다.



사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나라가 제대로 자리 잡아 공동체 문제로 더는 개인의 삶을 희생하는 일이 없이,

시민은 각자의 사사로운 행복에만 몰두할 수 있는 세상.

내가 행복하고 즐거워도 미안하지 않고.

모두가 잘 살아서 내가 잘 사는 것이 죄송하지 않은 그런 세상 말이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차라리 우리처럼 해결해야 하고, 이뤄내야 하는 '나'라는 단위를 뛰어넘는 공동체의 과제가 있다는 점이 더 낫다는 생각까지 슬그머니 들려고 했다.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시간과 많은 사람들의 노고.

인격적인 희생과 많은 목숨을 잃고 여기까지 왔다.

말 한마디에 감옥에 끌려가고.

유인물 몇 장으로 고문을 당하고.

괴로움을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고.

취업길도 막아 빈털터리로 비참한 궁지로 몰아내던 잔인함.

그때 대의를 위해 고생했던 사람들은 지금도 공동체를 위해 여전히 고생을 하고.


남이야 죽 든 살든 골방에 틀어박혀 답안지만 달달 외던 자들은,

희생자들이 이루어놓은 민주주의를 맘껏 누리면서,

도리어 민주주의를 훼손하면서 사익을 챙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한편,

코로나 19 팬데믹을 지나가는 지금.

그때 우리가 선진국으로 여겨 따라가야 할 대상이었던 나라들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보려니.

언제 우리가 이만큼이나 컸나, 대견하다.

지금 청년들은 그 시절 우리가 선진국에 나가서 느꼈던 위축감이나 막연한 선망은 결코 실감하지 못하겠지.


장하다,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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