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부르크의 그 집

by 기차는 달려가고

1987년 겨울 유럽 여행을 떠날 때, 이번에는 꼭 아버지가 공부하셨던 프라이부르크에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프라이부르크에 가기 전에 도르트문트에서 공부하던 동창을 찾아갔는데,

아마 베를린에서 출발했던 것 같다.


친구와 연락이 안 된 채 주소만 들고 새벽에,

캄캄하고 진눈깨비가 내리는 역에 내렸다.

도르트문트는 기차역이 높은 지대에 있었던지, 드문드문 전등 불빛만 내려다보이던 어두운 시내 풍경이 기억난다.

어떻게 대학 기숙사까지 가나, 막막했었네.



혼자 길을 헤매다 도착해 이른 아침에 친구를 깨우고.

민폐를 끼치면서 기숙사 빈방을 얻어 잠도 자고, 학교 식당에서 밥도 먹었을걸.

친구는 프라이부르크로 가는 나를 걱정해 그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자기 고등학교 동창에게 나를 '인계'했다.


프라이부르크까지는 당연히 기차를 탔다.

중간에 같은 객실에 멋진 노신사가 타셨는데 프라이부르크 대학 공과 계열 교수라 하셨다.

학교에 중국 학생들이 많이 오고 있다시면서,

중국 유학생들이 뛰어나고 열심히 공부한다고.

앞으로 중국은 크게 발전할 거라고 예상하셨다.



친환경 도시로 널리 알려진 프라이부르크는

흑림지대에 포함되는 도시라 숲이 참 좋았다.

도시 자체도 잘 만들어지고 잘 가꾸어진, 유서 깊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숲에 둘러싸인 도시에는 개천이 있고.

(우리나라 아산의 외암마을처럼) 길을 따라 도랑이 흘렀다.

졸졸 물소리가 새의 지저귐처럼 어찌나 즐거운지.

친구의 친구는 나와 함께 걸으며 도시 곳곳을 보여주었고,

마침 토요일이라 아침에 대성당 앞에 선 농부들의 장터에서 빵도 사 먹었다.


아직은 독일도 힘든 시기여서 장학금으로 꾸려가던 아버지의 유학 생활은 고되고 어려웠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아름다운 도시에서 마음의 위로를 받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놓였다.



그날 친구의 친구는 동급생의 집에 볼일이 있었는데,

내게 같이 가서 이곳 학생들이 사는 모습을 보라고 했다.

길 옆으로 깊은 개천이 있는 오래된 집이었다.

방에 올라가니 찾는 사람은 없고 룸메이트가 대신 볼 일을 봐주었다.


그 학생이 사는 집은 조그만 3층(?) 집의 2층에 있는 원룸 형식이었는데,

여러 학생들이 집을 나눠 썼던 것 같다.

가구라고는 딱 필요한 최소한만 덩그러니 놓인 간소한 집.

얇은 유리창으로 볕이 환하고 바로 옆에 흐르는 개울 소리가 들렸다.



그 여행에서 돌아와 한참 뒤, 이삿짐을 싸다가 아버지가 독일에서 귀국할 때 선물로 받았던 프라이부르크 사진집을 찾았다.

흑백의 사진집에는 내가 보았던 학교, 성당, 시청사 같은 대표적인 건물들과 함께 공원, 숲, 마을 사진이 여럿 있었다.

그중에 내가 들렀던 개울 옆 그 동네가,

바로 학생이 살던 그 집이.

사진집이 나오고 30년이 지나 내가 보았던 그대로 사진에 있었다.


도대체 언제 지어지고 만들어진 동네이고 집인데.

백 년이 지났는지, 이백 년이 지났는지 세월이 흘러도 전혀 불쌍해지지 않은 채.

여전히 늠름하게 자리를 지키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보금자리라는 점이.

건설의 현장, 서울을 살아가는 내게 자그마한 충격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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