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온 사람들은 알겠지만.
중국은 땅도 넓고 사람들도 정말 많다.
나는 1990년 대 초,
중국과 수교하고 오래 지나지 않아 항저우에서 일주일을 있었고.
1997년 겨울에는 베이징에서 며칠을 보냈다.
아파트 단지 안에도, 거리에도, 시장에도.
어디서나 사람들이 무더기로 밀려다녔다.
무질서하고 복잡하고 시끄러운 인상이 깊게 남았다.
항저우에서는 서호가 확실히 좋았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서호는 항조우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친근한 곳 같았다.
멋도, 운치도 있고.
확실히 긴 시간이 축적된 깊이가 있었다.
서호와 함께 영은사는 오랫동안 항저우 사람들의 생활에 깊이 스며들어 있었는데.
그때는 두 곳 모두 미처 관리의 손길이 닿지 않아 부분 부분 무너지거나 황폐해진 부분이 눈에 띄었었다.
어머니와 나는 다른 분이 예약해둔 시내의 호텔에서 머물렀다.
항저우에는 샹그릴라 호텔이 있었다.
넓은 부지에 정원이 있어서 시내를 돌아다니다가는 곧 샹그릴라 호텔에 가서 쉬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에게는 말 그대로 그곳이 항조우에서는 샹그릴라였나 보다.
아침에 일어나 호텔 창밖을 내다보면 거무티티한 주택들 검은색 기와 위로,
연통에서 뿌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난방하는 계절이 아니었으니 아침 식사를 준비하려 부엌에서 아궁이에 불을 지폈을까?
항저우에서 일주일을 보낸 뒤 홍콩 공항에서 곧바로 침사추이로 가서 내가 좋아하던 카페로 갔다.
섬세한 손길로 정갈한 그릇에 차와 케이크를 서빙받았을 때의 안도감은 잊을 수 없다.
휴, 다시 돌아왔구나, 숨을 크게 내쉬었지.
일주일 동안 우리는 왜 그리 긴장하고 무엇을 경계했을까.
그 정신없고 차와 사람들로 우굴거리는 홍콩 한복판에서 안도했다니 말이다.
그때 중국은 경제 발전에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사람들 눈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온달까.
막혀있던 빗장이 풀리고 자, 이제부터는 달려도 됩니다, 하니까.
묶여있던 사람들은 옆 사람들을 막무가내로 밀고 제치면서 앞으로 나서겠다는 열망으로 몸이 터질 것 같아 보였다.
규칙도, 원칙도 염두에 둘 틈이 없이 무조건 달려라.
이겨라.
움켜쥐어라.
우리가 그런 시절을 지나왔기 때문에 그 집요한 욕망을 눈치챌 수 있었다.
공항에서 겨울의 베이징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자작나무 가로수가 위로 곧게 뻗어 있었다.
거리의 사람들은 군복 같은 카키색 외투와 견장이 장식된 모자를 걸치고 다녔다.
옷가게에서는 그런 옷들이 팔리고 있었다.
군인도 아니고 군복도 아니고 그냥 일반 사람들의 옷이란다.
베이징의 고급 아파트 엘리베이터에는 두 명씩 짝지어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직원들이 주민들이 가는 층의 단추를 눌러주고 있었다.
되도록 많은 인원을 고용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백화점에는 (한물간) 고급 수입품이 어이없이 높은 가격표를 붙이고 있었다.
거리에는 고층 빌딩, 어마어마한 크기의 건축물과 동시에
지나치게 누추한 집들과 얇고 허름한 차림새의 사람들이 지게와 손수레를 사용해 고달픈 노동을 하고 있었다.
내가 다녀온 중국은 먼 옛날이야기이겠지.
지금 중국의 도시는 더 화려해지고 번성하다.
부자가 넘쳐나고 대중국을 자랑하며 중원의 영광을 으스댄다.
지금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과 교류가 많다.
만족스럽게 중국 생활하시는 분들의 글을 읽는다.
지난 경제발전의 시간 동안,
모든 중국인들의 형편이 다 좋아졌을까?
중국 안의 모든 사람들을 평등하게 품고
다 함께 풍요롭고 안정된 새로운 세상으로 갈 의지가 그들에게는 있었을까?
나만 잘 살겠다는 욕망에서,
우리 모두 잘 살아봅시다, 로 인식을 전환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나라가 지나온, 그리고 지금 우리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해관계의 충돌을 보라.)
처음부터 우리는 모두 함께 잘 살아야 합니다!
라는 공고한 결의 없이, 서로 짓밟고 빼앗으며 이루어낸 1세대의 성공신화를 과연 말끔하게 극복할 수 있을지.
중국은 공산주의를 버리지 않고 있다,
이상을 실현해 내겠다는 굳건한 의지로 끝내 다 함께 잘 사는 사회를 성취해내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