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축 도로에 간 적이 있다.

by 기차는 달려가고

대학 졸업을 얼마 앞두고 여행을 했었다.

그러니까 1983년 1월 혹은 2월 초쯤.

즉, 옛날 옛적 이야기라는 말씀.


내가 경상도로 해서 설악산까지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하니까,

한 선배가 영덕의 강구와 축산을 잇는 길이 있는데 풍경이 참 아름답다고 꼭 가보라고 했다.

아, 좋다는데 안 가볼 수 없지.

수첩에 받아 적었다.



이른 아침에 영천을 출발해 어찌어찌 영덕으로 가서 강구와 축산 사이를 운행하는 버스를 탄다.

마지막으로 설악산 유스호스텔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그때는 구글 지도 같은 거 없었어요.

버스 노선, 운행 시간표 같은 거 알려주는 스마트폰이 어디래요.

일일이 종이 지도 펴놓고 연필로 선을 그어 지리를 짐작하고,

뜸하게 운행하는 버스 시간은 운에 맡겼더랬다.


그래도 강구까지 찾아가서 축산을 다니는 시골버스를 탈 수 있었다.

지금 돌아보니 좀 놀라운걸.



강구는 제법 큰 항구였다.

겨울이라 그랬는지 바쁜 아침 시간이 지나서 그랬는지 항구는 휑~했다.

썰렁하게 창고 같은 건물과 작은 배 몇 척,

그리고 바다만 있었다.

파아란 바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바다가 햇빛을 받으며 살짝살짝 출렁거렸다.


축산은 아주 작은 포구였다.

가게들이 있고 사람들도 오갔던 기억이다.

그 사이에 내 마음이 따듯해져서인지 작은 축산 포구는 오히려 활기찼다는 인상이 남았다.



강구에서 탄 버스에는 사람이 무척 많았다.

지금 생각하니 아마 장날이 아니었나, 싶은데.

물건을 이고 진 지역 사람들이 차 안을 꽉꽉 메웠다.

눈만 껌뻑 껌뻑하던 닭도 몇 마리 그물에 묶여서 고생했지.

나는 사람들과 물건 사이에 끼어서 몸을 펴지 못한 채 찌그러져서는.

그래도 바깥 풍경은 보아야겠다고 고개만 창쪽으로 쭈욱 내밀고 서있었다.


강구에서 축산으로 가는 길은 해변을 바로 옆에 끼고 난 길이었다.

손을 뻗으면 반짝반짝 바다가 손에 잡힐 듯하고,

마을을 지날 때는 초가집 처마를 스쳤다.

드문드문 나타나는 길옆의 마을들은 초라하고,

사람들은 고단해 보였지만.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파랗고 투명한 차가운 바다에는 물질하는 사람들의 머리가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몸은 뒤틀려서 냄새도 고역스러웠지만.

끝없는 파란 바다와 버스 안의 사람들과 그들의 고단한 삶이 그대로 드러난 강축 도로 버스의 풍경은 내 안에 깊이 새겨졌다.



그날 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버스를 몇 번을 갈아타면서,

예정대로 설악산까지 갈 수는 있었다.

다만 설악산 관광지구에서 내려야 할 버스가 설악산으로 접어드는 길 초입에서 털썩 서버리는 바람에.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순식간에 모두 사라져 버리고,

나만 어리둥절 한참을 가야 있는 유스호스텔까지 어찌 가야 하나,

달빛 괴괴한 텅 빈 길에 멍하니 서있었다.

그래도 구세주는 나타나더라.


하여간에 늦은 밤, 설악산 유스호스텔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다음날에는 권금성에서 눈이 내려앉은 겨울 설악의 나목들을 보았지요.



검색해보니 이제 강구는 대게로 유명해졌고.

강축 도로는 잘 정비되어 자전거도로와 산책도로도 만들어지고.

전망대에 쉼터와 여러 편의시설들이 생겼다고 한다.


그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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