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에서 다하우까지

by 기차는 달려가고

뮌헨에도 갔었다.

여고생 때 여러 번 읽었던 전혜린의 글을 통해 익숙했던 뮌헨, 그리고 슈바빙 지역을 나는 꼭 가보고 싶었다.

비엔나 후배의 친구가 뮌헨에서 피아노를 공부하고 있었는데,

역시 음악을 하는 또 다른 친구들도 해서 여럿이 어울려 뮌헨에서 재미있게 지냈다.

그런데 어디서 잤더라?

비어있는 기숙사 방을 빌렸던가...

하여간 뮌헨의 후배 친구에게 여러모로 신세를 지면서 우르르 뮌헨 일대를 여행했다.


뮌헨은 베를린과도, 다른 독일의 도시들과도 구별되는 독특한 개성이 있는 도시였다.

튼튼한 경제력이 느껴지는 대도시 뮌헨에서 나는

독일의 다른 도시들보다 명랑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도시는 넓고 구경거리도 많고.

다 보려니 피곤하고 힘들었음.



옥토버 페스티벌 기간이 지났는데 행사 장소는 열려있었다.

뜨끈한 국물이 있는 면 음식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내 기억이 정확한 지는, 흠.

붉고 흰 줄무늬 테이블 보가 덮인 행사장은 그냥 앉아만 있어도 막 흥겨운 기분이 되는 곳이었다.

뮌헨에는 지나간 시대의 건물들도, 넓은 공원도, 현대 도시의 면모도, 모두 모두 풍부했다.

하지만 대학 기숙사 방 작은 건 어디나 마찬가지더군.


퓌센의 노이슈반스타인 성에도 갔었다.

멀리서 본 가파른 산과 아주 예쁜 하얀 성의 풍경만 그림엽서처럼 기억에 남았다.

그보다는 어디더라 여럿이 작은 성에 놀러 갔던 기억이 더 또렷하다.

높이 솟은 성벽에 걸터앉아서 눈 아래 펼쳐진 너른 평원과 마을의 경치를 둘러보고.

과자를 먹으면서 동행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이 실제인지 환상인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른다.



뮌헨 근처에는 나치가 세운 다하우 포로수용소가 있다.

다 함께 갔었는데 미리 각오를 했음에도 막상 보니까 심리적 타격이 참 컸다.

흔적은 처참하고, 권력자는 잔인했다.

짓밟힌 인간은 무력하고, 그들이 겪었을 몸과 마음의 고통은 처절했다.

그 모든 고통들이 끈적끈적 수용소 건물에 들러붙어있다가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통곡을 터뜨리는 것 같았다.

꼭 다시 와서 찬찬히 봐야겠다, 생각했다.


일행들과 일정을 끝내고 나는 혼자 뮌헨에 남았다.

며칠 쉬면서 돌아다니느라 쌓인 피로를 풀고,

다시 가보고 싶었던 곳들을 슬슬 구경했다.

그리고 뮌헨을 떠나기 전,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다하우 수용소로 다시 갔다.


기차역을 나와서 수용소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두리번두리번 거리려니.

멋진 자동차가 내 앞에 서고 조수석 유리문이 스르르 내려가면서 멋쟁이 중년 부인이 고개를 내민다.

어디로 가냐고,

수용소로 갈 거면 자기네 집으로 가는 방향이니 태워주겠다고 말씀하신다.

어어?



남편 분은 운전하고 조수석의 부인은 차 뒷좌석에 앉은 내 쪽으로 몸을 돌려,

미소를 띠며 나의 여행 이야기를 묻고 수용소를 보러 와서 고맙다면서.

나치 시절의 만행과 피해자들에 대한 연민을 유창한 영어로 줄줄 설명해주셨다.

음, 알아듣지 못해 듬성듬성 눈치로 대답하느라 식은땀 좀 흘렸더랬어요.


내가 먼저 누구에게 부탁하는 일은 없는 사람인데,

적극적으로 어리바리 외국인을 먼저 나서서 차를 태워준 일도 고마웠고.

나치 시절의 잘못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며 외국인에게 알려주려는 태도도 새로웠다.

수용소 앞에서 나를 내려주면서 부부는 차에서 나와

구경 잘하고, 건강하게 여행 마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라고.

부모의 마음으로 격려하며 축복을 빌어주셨다.



고마워요, 두 분.

서로 사랑하고 위하면서 아름다운 인생을 사셨겠지요.

편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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