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이라는 표현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나는 자잘한 행복에 만족했었다.
이를테면 스무 살 시절에 어쩌다 깨어있는 새벽.
뒷산 암자에서 은은히 들려오는 새벽 예불의 목탁소리라든가.
비 내리는 날, 내 방 창문 앞에 있는 목련의 커다란 이파리에 빗방울이 툭툭 떨어지는 소리라든가.
추운 겨울날 늦게 귀가하신 아버지 손에 들려있던 뜨끈한 군고구마 봉지 같은.
다 커버린 자식들은 어릴 적 아버지가 밤에 들고 오셨던 군것질거리의 기억을 떠올리며 즐거워했었다.
추운 날 햇살 한 줌.
여행지에서 본 밤하늘의 별빛.
작열하는 햇빛에 휙 스쳐가는 시원한 바람 한 자락.
책을 읽다 손뼉 친 글 한 문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바이올린 한 소절.
내가 사랑하는 것들.
그래.
나는 이것들로 족해.
더는 욕심부리지 않을 거야.
그렇게 소소하게, 착하게, 조용히 일상을 살아가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것이 나답게, 정직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살았다.
다툼을 싫어하고,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나는.
시끄러움을 피해서,
복잡한 감정의 폭발에서 도망해.
자잘한 일상의 흡족함을 찾아 살아왔다.
거의 대부분 나의 마음은 잔잔한 평화를 지켜냈고.
나는 조금씩 인간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루하루는 충실했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물론 어려움도 겪었다.
누구나처럼 나의 인생도 쉽지만은 않았지만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감성은,
그래서 평화로운 나 자신에 만족하는 소망은 망가지지 않았다.
내가 살아온, 나다운 삶의 방향에 불만은 없다.
그런데 이제는 아쉬움을 느낀다.
나는 그저 안이했던 건 아닐까?
지독히 나태했던 게 아닐까?
극복했어야 한다는 후회가 있다.
나 자신의 테두리를 작게 그려 넣고 편안한 그 울타리 안에서.
이불 밖은 위험해!
편하게 살아온 시간에 환갑의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아쉬움이 든다.
이제는 극복해보자.
나 자신의 성향을 극복해보자.
힘들여 의미 있는 무언가를 추구해보자.
쉽고 편하게만 가지 말자.
나 자신에게 정직한 것이 바로 나다운 게 아니겠는가.
그렇게 이제는 나의 한계를 극복해보려 한다.
게으름, 행동력 부족.
편안하고 안전한 세상에 주저앉았던 나.
머릿속에서 생각만으로 모든 것을 시작하고 끝내는 공상의 시간은 이제 끝!
뛰어볼 테야, 넘어 볼 거야!
나의 한계를 넓히자.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 것 또한 나다움이다.
젊어 보이고 싶지도 않고,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도 않다.
다만 내 나이가 몇이 되었든 나는,
스스로에게 정직한 내 인생을 열심히 살아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