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좋은 계절.
휠체어에 앉은 어머니가 오마나, 하늘에 달이 떴네, 기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어두워지는 하늘을 쳐다보니 고층 아파트 위로 떠오르는 하얀 조각달이 보였다.
아, 예뻐라.
걸음을 멈추었다.
모녀는 달이 떠오르는 어두운 하늘을 우두커니 쳐다본다.
나오기 잘했어.
어머니 몸이 몹시 힘들어서 나올까 말까, 망설이느라 오늘은 시간이 늦었다.
축 늘어진 어머니를 보면 집을 나올 엄두가 안 나서 주저하다가.
그래도 힘들게 어머니 외출을 준비해서 집 밖으로 나왔다.
몸에 밝은 햇빛을 받고, 분주한 거리를 바라보고, 선선한 바람을 맞고.
그렇게 깊어가는 가을을 느끼면서.
잠깐잠깐 어머니는 육신의 고통에서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바람이 쌀쌀하다.
다시 휠체어를 밀어 집으로 향한다.
여름을 보내면서 어머니의 병세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그럭저럭 통증을 줄여주던 강한 진통제들이 더는 효과가 없었다.
온몸의 뼈들은 모두 금이 갔는지,
몸을 지탱해주지 못하고.
쓰러지는 도미노처럼 어머니 신체의 기능들은 잇달아 무너져갔다.
병원에서 예상했던 생존기간을 훨씬 넘긴 시간.
의식과 감각은 너무나 정상적인데.
아니 머리숱도 많이 줄지 않았고.
머리카락은 검은색이 더 많으며.
얼굴도 여전히 뽀얗게 고운 모습인데.
내부는 폭삭 무너진 형편이었다.
끔찍한 통증과 함께.
추석이 일렀다.
낮에는 볕이 따가웠지만,
솔솔 부는 선선한 바람이 상쾌했다.
미세먼지도 없고, 높고 파란 하늘에는 둥실둥실 하얀 뭉게구름.
참 쾌청했지.
어머니의 마지막 가을이 될 수도 있을 이 아름다운 날들을,
통증으로 고통받으며 침대에만 계시게 할 수는 없었다.
또 목을 죄는 듯한 지독한 통증을 완화시킬 무엇이든 해야 했다.
병원에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했으니.
집에서 휠체어로 갈 수 있는 거리에 한의원이 있었다.
진지한 젊은 한의사는 먼저 방문한 딸에게서 환자의 용태를 듣고는,
흔쾌히 환자를 받아주셨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두 번 통증에 도움이 될 만한 침 치료를 받기로 했다.
오랫동안 음식을 제대로 못 드시고 잠을 못 주무시니 몸은 앙상해서.
게다가 성한 뼈가 없으니 몸 어디를 붙잡을 수도 없는 상태.
힘들게 몸을 일으키고,
휠체어로 욕실로 이동하고, 다시 욕실 의자로 옮기는 지난한 과정.
그래도 따듯한 물을 몸에 흘리면 좋아하셨지.
욕실에서 나와 몸을 말리고, 옷을 갈아입고, 외출용 휠체어로 갈아타면서.
모녀는 땀을 뻘뻘 흘리며 고달픈 단계 하나하나마다 여기서 그만두어야 하나, 좌절했지만.
그래도 난관들을 넘기고 밖으로 나오면 어머니는 아, 좋다, 하셨다.
울퉁불퉁하고 경사진 길이라.
휠체어에 탄 어머니 몸은 고통스럽고.
밀고 가는 딸은 힘들었다.
환자가 많은 한의원에서는 어머니 사정을 많이 도와주셨고.
선생님은 찬찬히 환자의 통증을 살피면서 참으로 성심껏 돌봐주셨다.
그 따듯한 태도에 어머니와 딸은 마음에 크게 위로를 받았다.
한의원에서 나와서는 근처에 있는 성당에 들렀다.
마리아상 앞에서 모녀는 머리를 숙여 기도를 드리고,
잠시 쉬면서.
가을날 오후,
날이 참 좋구나, 힘없는 어머니는 작게 웃으셨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아이스크림을 먹거나, 케이크나 과일을 고르기도 했었다.
어머니 상태가 그나마 괜찮으면 느릿느릿,
사람들이 오기는 동네 구경을 했다.
무성한 나무들 푸른 이파리들이 빨갛게, 노랗게 변해가다가 나풀나풀.
색색의 마른 잎들이 바삭바삭 길에 쌓이던 날들.
어머니는 말씀이 힘들어지고 귀에는 소리가 아득해져.
그렇게 세상은 어머니를 점점 떠나갔는데.
그래도 어머니는 아름다운 가을날을 흠뻑 즐겨내셨다.
2019년 가을.
얇은 블라우스로 시작해 두툼한 숄로 몸을 감싸기까지 한 달 반쯤의 시간.
가을은 빠르게 지나갔다.
파아란 하늘은 매우 아름다웠고.
몸에 닿는 날씨는 참으로 좋았으며.
거리를 지나가고, 성당에 들르고, 빵집을 찾는 평범한 일상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가혹한 아픔에서 순간순간 눈을 돌려,
마음에 작은 기쁨을 느끼실 수 있었다.
어머니에게도, 딸에게도.
2019년 가을은 깊은 고통 중에 반짝반짝 작은 빛이 있었던,
소중한 날들이었다.
고마웠다.
2019년 가을 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