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돌아가시고 장례 마친 얼마 뒤 여행을 떠났었다.
9월 말쯤이었을까.
부산으로 기차 타고 가는 내내 굵은 눈물이 쏟아졌다.
고개를 창쪽으로 돌리고 손수건으로 얼굴을 누르고 있었지만.
주변에 계시던 분들까지 고요했으니,
울고 있는 나를 배려해주셨던 것 같다.
부산역에 내렸을 때 정신이 멍했던 나는 택시를 타고 해운대로 가자했다.
날씨가 험했으니 평소에 안 타는 택시를 잡았을 텐데,
바닷가에서는 비바람이 더 심할 거라는 짐작을 왜 못했을까?
먼저 밥을 먹으려고 바닷가 호텔들 뒤편 거리에서 택시를 세웠을 때,
하늘은 시커먼 잿빛이었다.
세찬 바람 때문에 택시 문을 열기도 힘들었지만,
겨우 문을 열어 발을 내밀자 바람이 내 몸을 떠밀었다.
택시에서 내려서 걸어보려 했는데,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몸이 뒤로 밀렸다.
결국 그 택시를 다시 타고 길을 빙 둘러서 조선호텔로 갔다.
파도가 무섭게 몰아치고, 짙은 잿빛 하늘, 더 어두운 잿빛 바다-를 나는 호텔 로비에서 바라보았다.
굵은 빗방울이 두꺼운 유리창을 때리고.
으르렁으르렁 파도가 건물을 덮칠 듯 포효하는데.
나는 방금 전에 직접 겪었던 태풍의 위력은 그새 잊어버린 듯.
안전한 건물 안에서 따듯한 차와 달콤한 케이크를 먹으면서,
대자연의 조화를 그저 풍경인 듯 바라보았다.
내 딴에는 태풍을 피한다고 경주로 갔던 것 같다.
그때는 지금처럼 태풍 경로를 쉽게 알 수 있는 때가 아니었다.
뭘 타고 갔지?
기억나는 건 내가 경주에 도착했더니 경주에도 비바람에 가로수가 꺾일 정도로 태풍이 거셌다는 것.
택시 기사는 태풍이 부산에서 경주로 왔다면서 이 난리통에 부산에서 경주로 온 나를 기막혀했다.
유스호스텔로 갔고.
나 말고는 손님이 없어 텅 빈 유스호스텔에서 나는 방문을 꼭 잠갔다.
윙윙 바람이 거센데 불을 켜지 않은 시커먼 복도가 무서웠다.
밤 사이에 태풍이 물러가서 아침에 깨났더니 맑은 하늘에 해가 쨍쨍했다.
바람 솔솔 부는 기분 좋은 가을날.
길을 걷다 보니 부러진 나무들과 쓰러진 풀들.
진흙이 엉겨 붙은 가게와 벽돌 담장이 무너진,
태풍이 만들어낸 흔적들이 여기저기 있어서.
안 그래도 복구하느라 바쁜 사람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박물관에 가서 한나절을 보냈고.
둥근 능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는 한적한 유적의 도시를 천천히 걸었다.
마음에는 슬픔이 가득했지만,
어쩌겠어요,
이제는 아버지 없이 살아가야지요.
세찬 태풍을 따라갔던 여행.
비명 같은 소리로 도시를 휩쓸던 비바람에 몸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슬픔으로 비틀거리며 태풍을 따라갔던 일도 추억이 되는구나.